영화 케빈에 대하여

우리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by 토닥맘

<스포한가득, 생각할거리 많은 심리스릴러영화>




# 엄마<에바>에 대하여

- 대부분의 사람은 여성들이 아이를 갖게 되는 순간부터 저절로 모성애가 생긴다고 믿고 있다. "난 정말 아이들이 싫어"라고 이야기했던 여성들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까지 끔찍하게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흔히 임신과 출산은 최고의 축복이며,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다고도 말한다. 열달동안 뱃속에서 아이를 품고, 난생 처음 경험하는 양육의 과정이 그저 축복이고 아름다움일까? 실상은 매우 고단하고 괴로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엄마라는 이유로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하며, 묵묵히 견디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방법을 배워나간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바'처럼 말이다. '에바'는 케빈을 낳기 전 여행 작가였고, 자유와 도전이 주는 아름다움을 경험했던 사람이었다. 에바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고, 기쁨이 없는 상태로 아이를 낳게 되었다.

아이를 품에 안으며, 행복해하는 아빠 프랭클린과는 달리 에바는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하다. 아니나다를까, 불안함이 가득한 에바가 감당하기에는 케빈은 참 예민한 아이였다. 하루종일 울었고,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던지 에바는 공사판에 있는 것이 더 편안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악을 쓰며 울기만 하던 아기 케빈은 점점 자라났지만, 의도적으로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고, 말을 하지 않았으며, 대소변 역시 가리지 않았다.(못한게 아니라 않았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이상없음'이라는 소견뿐, 그 말은 오히려 에바를 더욱 지치게 한다.

아무 이상이 없음에도 지시에 온전히 반응하지 않고, 일부로 반대행동을 하고 말썽을 부리는 케빈을 바라보며 엄마 에바는 얼마나 무력한 마음이 들었을까?

화가 난 그녀는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라고 이야기하고 만다.


에바와 케빈을 보다 비정상적인 관계로 몰아가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에바는 여행작가 시절을 그리워하며 세계 지도로 방을 정성스레 꾸몄고, 이를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케빈인 물감물총으로 온 방을 더럽힌다. 화가 난 에바는 케빈을 밀었고, 이때 사고가 발생하여 팔이 부러지고 만다. 케빈은 이 사실을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였으나, 둘 간에는 미묘한 갑을관계가 형성되고 만다. 죄책감을 갖는 에바의 심리를 이용하는 케빈...

에바는 이로 인해 더더욱 케빈을 훈육할 수 없게 되었고, 삐뚤어진 모습으로 케빈은 점점 더 성장하였다. 케빈과의 미묘한 관계를 누구도 알지 못했고, 심지어 아빠인 프랭클린에게 이야기해도 믿지 않을 뿐이었다.




# 아들<케빈>에 대하여

- 에바는 케빈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케빈은 아이를 처음 길러보는 초보 엄마에게는 버거운 대상이었다. 하루 종일 악을 쓰며 울었던 예민한 케빈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초보 엄마 에바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케빈은 필요를 채우지 못한 채 양육자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갔다. 그들은 시작점부터가 꼬여있었던 것이었다. 케빈이 둘째 실비아처럼 좀 더 무던하고, 반응적인 아이었더라면 에바는 가슴 안에 있는 모성애를 좀 더 빨리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특수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로서 안타까웠던 것은 명확한 행동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왜 적극적으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측하건데 에바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양육에 지쳐있었고, 학습된 무력감의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케빈이 보이는 모습은 전형적인 '애정결핍'의 상태다. 그것도 잘못된 애정 결핍의 예 .

양육자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해야 할 영아기부터 결핍이 있었고, 케빈은 오로지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행동했다. 케빈은 엄마가 평소에는 자신에게 무신경하지만, 본인이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반항할 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반대로 행동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고, 명확하고 일관된 지도를 받아본 적 없는 케빈은 더욱 영악하고 섬뜩하게 자라났다. 애정결핍인 케빈은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날 버리지 않을까?" 확인받고자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부정적인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함께 하는 에바를 바라보며 결핍을 채우고자 한다.




# 케빈은 사이코패스인가?

- 안타깝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는 맞다.

케빈은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친구들을 체육관에 가둔 채, 죽인다. 활을 쏘는 그의 표정에서는 두려움도,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영유아기에 채워지지 않은 결핍은 잘못된 상호작용의 방법으로 나타났고, 그의 행동은 거의 방치된 채, 유지되었다. 에바의 죄책감과 무력감, 프랭클린(아빠)의 무관심과 무조건적인 허용은 케빈을 살인자로 자라나게 한 것이다. 그것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사이코패스로 말이다. 분명 그의 살인에는 이유가 있다. 에바와 프랭클린이 이혼한다는 이야기를 엿들은 케빈은 에바가 자신을 떠나지 않도록 살인을 계획한다. 늘 그래왔듯 잘못된 방법으로 에바의 관심을 유지시키려 했다. 케빈에게 필요한 건 에바의 관심뿐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 마지막 장면

마지막이 되어서야 에바는 관객들 모두가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한다.


"왜 그랬니?"

처음으로 왜라는 질문을 한다. 케빈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 케빈의 눈동자가 떨리며 대답한다.

"그땐 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모르겠어"

엄마라는 의무감 속에 케빈을 사랑하고자 노력했던 에바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담아 케빈을 꼭 안아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아들 케빈이 살인을 저지른 행동)에 맞딱드리면서, 죄책감에 빠진 무력했던 엄마 에바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케빈에게 질문했다. 처절하고 끔찍한 상황을 통해 평행선과도 같았던 모자는 비로소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세상이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할 때,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라는 이유로'




# 왜?라는 질문

- 케빈처럼 파괴적인 방법은 아니겠지만, 나는 어긋난 부모-자녀의 관계를 종종 봐왔다. 대게 이러한 자녀의 경우 또래 아이들에 비해 불안도가 높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아이들의 경우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결정적 시기에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거나, 일관된 양육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을 경우 아이의 불안도는 높아지고, 이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왜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해없이 행동을 억압하거나, 방치할 경우, 부모-자녀 간 잘못된 상호작용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성장할수록 자녀는 부모가 기대하는 행동의 반대로 행동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자녀의 태도에 부모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교육심리에서 자주 쓰는 용어 '학습된 무력감'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아이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기며,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방치된 채,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라는 모든 아이들이 케빈처럼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보여지는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 즉 행동의 기능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민감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부모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는 현상만 보며 단정짓고, 판단하는 세상 속에서 "왜 그러는 것일까?"고민하는 모든 이들의 태도는 아름답고, 가치롭다.

세상 속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왜"냐고 묻기 위해서는 우리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

노력해도 변하지 않은 삶 속에서 어쩌면 에바처럼 학습된 무력감에 빠져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람쥐 챗바퀴 돌 듯 변함없는 일상 속에서 한번쯤 자신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버티고 있니?"


왜라는 질문은 변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주체성을 가진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분명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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