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하락에 베팅한다는 것의 의미

– 케인스의 유령과 나

by 이신


나는 상승을 신뢰하지 않는다.
시장이 반드시 오른다는 확신,
경제가 언제나 회복한다는 낙관,
자본주의는 결국 우상향한다는 믿음.
그 모든 전제는 어딘가 모르게 느슨하고 낭만적이다.

아니, 나는 그것을 ‘종교적 확신’에 가까운 신념 체계라고 느낀다.
투자의 세계에선 그것을 ‘장기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건 한 편의 도그마처럼 느껴졌다.
누구도 되묻지 않는 믿음, 다시 의심하지 않는 언어들.

그래서 나는 ‘상승’이 아니라 ‘하락’으로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리버스 ETF.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ETF.
말 그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일 때, 수익이 나는 구조.

이건 단지 수익 구조의 반전이 아니다.
이건 인식 구조의 반전이며, 사유의 재배치다.
‘시장의 하락’이란 단어를 단지 손실이 아닌
‘해석의 가능성’으로 열어보려는 시도다.


� 케인스는 일찍이 시장을 예측 가능한 수학 공식이 아니라,
**심리와 군중의 흐름이 교차하는 '무의식의 무대'**로 보았다.

그가 말한 "미인 선발 대회"의 비유는 단순하지만 깊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할 사람을 예측하는 게임.
다시 말해, “자신의 판단”보다 “군중의 예측”을 예측하는 다층적 사고 게임.

그는 이것을 ‘투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건 거의 하나의 사회적 심리 실험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렇게 정교한 인지와 예측을 논하면서도
결국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적인 계산보다 본능적 충동에 더 쉽게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균 기대값보다
공포와 탐욕, 질투와 모방, 무지와 패닉에 더 민감하게 작동하는 존재라는 것.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이토록 비합리적인 존재들로 이루어진 시장은,
예측이 아니라 감응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지점에서 케인스를 넘어서고 싶다.


그는 예측의 무의미함을 말했지만,
나는 예측을 감지로 대체하는 실험자가 되고 싶다.
시장의 논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시장의 무논리에서 패턴의 반복을 느끼려는 자.
그게 바로 내가 '감응자'라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유다.

리버스 ETF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파생상품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거울이다.


대부분이 두려움으로 도망칠 때,
나는 그 장면 속에 머물며 인간 심리를 관찰한다.
모두가 던지는 순간에 나는 기록하고,
모두가 회피하는 순간에 나는 패턴을 감지한다.
그 속에서 나는 시장이라는 구조가
결국 '심리의 총합'이라는 본질을 되비춘다는 걸 깨닫는다.


리버스는 그 거울을 나에게 건네준 첫 장치였다.
나는 그 장치에 나의 내면을 비춰보기로 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투자 성공기나 실전 노하우의 나열이 아니다.
이건 ‘감응자가 자본주의의 하락과 어떻게 접속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일지다.

나는 ‘성공하는 법’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대신,
‘무질서와 파괴 속에서 인간이 어떤 패턴으로 흔들리는지를 관찰한 기록’을 남길 것이다.

그 기록이 의미 있는 건
그 안에서 ‘돈을 벌었는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읽어낸 흔적이기 때문이다.


� 감응자의 선언

나는 시장을 예측하지 않는다.
나는 시장을 감지한다.
나는 상승을 숭배하지 않는다.
나는 하락을 받아들인다.
나는 리버스 ETF를 통해 수익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직접 통과해보기 위해 투자한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라,
해석을 위한 실험이고,
사유를 위한 장치이며,
내면 구조를 시험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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