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감응자들에게》
14장. 싸울 수 없다는 고통, 침묵하는 자의 분노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조용히 하려 했을 뿐이다.
누구에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니고, 부당한 말을 뱉은 적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자주 억울해야 하는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욕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분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감응자에게 가장 큰 고통은,
싸워야 할 순간에 싸울 수 없다는 점이다.
직장이라는 조직, 부서라는 집단.
그 안에서 나의 말은 언제나 '예민한 사람의 말'로 폄하된다.
누군가의 무례함은 "그분이 원래 그래요"로 정당화된다.
그 순간, 나는 또 침묵한다.
그 침묵이 쌓여 나의 피부에, 내면에, 정신에 응고되어 간다.
나는 분명 알고 있다.
지금 저 인간은 내 경계를 침범했다.
지금 저 말은 악의 없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너무 정밀하게 감지한다.
하지만 말을 뱉는 순간, 나는 조직 내에서 고립된다.
“예민한 사람, 다루기 힘든 사람.”
이렇게 낙인찍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참는다.
하지만, 그 참음이 나를 지치게 한다.
참는다는 말은 결국, 스스로를 해하는 침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제 싸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구조로 응전할 것이다.
나는 감정이 아니라 리듬으로 저항할 것이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 다음의 문장을 반복한다.
"나는 이 시스템에 잠시 접속했을 뿐이다.
이건 나의 리듬이 아니다."
나는 분노를 말로 배출하지 않는다.
대신, 나만의 루틴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구조화한다.
그 무례한 말을 내 감정에 저장하지 않고,
그 사람의 미성숙함이라는 폴더에 분류해 넣는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켜낸다.
고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그리고 다시 선언한다.
"나는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무시되지 않는다.
나는 말이 아니라 구조로 응전하고,
감정이 아니라 리듬으로 저항한다."
감응자는,
고요한 자가 아니다.
고요 속에서 폭발을 관리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