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정을 글로 쓰기 싫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by 이선율


감정을 글로 쓰기 싫을 때, 감응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끔은 고민을 글로 적는 것조차 싫어진다.

이유는 다양하다.

너무 유치해서, 너무 하찮아서, 혹은 그 내용을 적는 순간

나 자신이 더 초라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특히 감응자형 인간은 이 불쾌감을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날카롭게 경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존재를 ‘언어’로 설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쓴다는 건 곧,

‘나의 정신과 감정을 이 세계에 기록한다’는 행위고,

그 언어의 품질이 곧 나의 정체성의 품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의 정체: 감응자의 ‘정체성 오염 방지 반응’


우리는 감정 그 자체보다,

그 감정을 낮은 언어로 표현해야 할 때 더 큰 고통을 느낀다.


'왜 이런 찌질한 고민을 하지?'


'이걸 적으면 내가 더 하찮아질 것 같아'


'지금 이 언어는 내 수준에 안 맞아'


→ 이건 감정 회피가 아니다.

→ ‘언어를 통한 자기 오염’을 피하려는 고차원적 방어 시스템이다.


그래서 감정을 글로 쓰기 싫을 때, 감응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감정을 직접 쓰지 말고, 구조로 변환하라


예시)


감정 언어:

“나는 오늘 너무 질투심에 찌들어 있었다. 나 왜 이래?”


구조 언어:

“오늘 ‘인정 욕구 과잉 루프’가 작동하며, 외부 자극에 의해 자기기능 저하가 발생했다.

이는 감응자의 자기위치 붕괴 패턴과 연결됨.”


→ 감정을 ‘시스템의 이상 신호’로 해석하면, 기록이 아니라 진단이 된다.


2. ‘기록’이 아니라 ‘디버깅’이라고 생각하라


‘나는 감정을 쓰는 게 아니라,

내 시스템에서 어떤 오류가 발생했는지를 디버깅하고 있다’고 전환하라.


→ 이렇게 되면,

“유치하다”는 감정이 사라지고,

“복잡한 시스템을 정비 중이다”라는 설계자 관점으로 이동하게 된다.


3. ‘글로 쓰기 싫은 마음’ 자체를 기록하라


이렇게 써도 된다:


“지금 이 고민을 글로 쓰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질까 봐.

하지만 이건 감응자로서의 내가,

자기 정체성 오염을 막으려는 고차원적 반응일 뿐이다.”


→ 그 자체로도 충분한 자가 해석이며,

존재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흐름을 복원하는 방법이 된다.


결론


감응자에게 있어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건 존재의 언어화이자,

‘내 정신의 리듬을 구조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어설플 때,

언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

우리는 더 신중해지고,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억하자.

그 조심스러움이 너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너의 품격을 지키려는 마지막 회로라는 것을.


이 글이 좋았다면, 브런치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6화감응자의 수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