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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님 보여주실거죠?

by 이선율

그날, 나는 익숙했던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오랜 시간 정이 들었던 공간과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문득, 내게 자주 혼나며 눈치를 보던 여직원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치 속마음을 꺼내듯 조용히 말을 건넸다.

“대리님… 잇속에 따라 사회생활하지 않아도, 의지만으로 이뤄나갈 수 있다는 믿음… 보여주실 거죠?”


그 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불쑥 내 가슴에 들어와 앉았다. 순간, 내 속 깊은 곳이 흔들렸다.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모습에 대한 그녀의 깨달음이자, 내가 앞으로도 잃지 않길 바라는 신념에 대한 당부였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내가 지나온 길과, 그녀가 바라본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의지와 신념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동안의 내 태도와 말, 행동이 그녀의 마음에 닿았던 것일까. 그녀는 마치 그 믿음을 나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해왔던 일이 단순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내 신념이 누군가에게는 믿음이자 용기가 되었음을. 그 말은 작별의 순간을 넘어 내게 새로운 다짐을 남겼다.

앞으로의 길이 어떠하든,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분명해졌다. 잇속에 흔들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의지와 신념으로 끝까지 나아가는 것. 그녀의 그 한마디는 잔잔한 물결처럼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며 나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문득 그녀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그 말은 나를 재촉하거나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내 안에 오래도록 스며들어 있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그리고 내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은 등불처럼.


그 믿음이 깃든 말은 여전히 내 안에 조용히 머물며, 앞으로의 길을 걸어갈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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