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통해 누구나 작가가 될수 있는 시대에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
요즘,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주 묻는다.
GPT가 단숨에 원고를 뽑아내고,
누구나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에세이든 소설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
과연 이런 시대에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누구나 자동으로 맞춤법을 교정할 수 있고,
구조를 잡아주는 프롬프트 도구가 존재하며,
GPT는 논리적 구성과 감정적 리듬까지 모방해낸다.
이제는 ‘잘 쓴 글’보다 ‘누가 썼는가’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그 사람의 언어, 문장력, 단어 선택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고유한가가 본질이 되었다.
GPT를 쓰면 누구나 수준 있는 글을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GPT에게 ‘글의 시작점’은 인간의 질문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이 글을 쓰는가?
이 이야기가 지금 필요한가?
이건 아무리 정교한 언어 모델이라도
‘사람의 삶을 살아본 자’만이 할 수 있는 감응의 지점이다.
나는 지금,
‘어떤 질문을 던져야 좋은 글이 나오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있는 상태다.
이것은 감각이자, 리듬이자, 삶의 흔적이다.
문장은 AI가 다듬어줄 수 있다.
감정은 알고리즘이 패턴화할 수 있다.
문체는 누구나 학습할 수 있다.
하지만 사유는 흉내낼 수 없다.
구조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
모순의 틈에서 질문을 도출하는 감각
감정을 언어가 아니라 ‘에너지’로 직조하는 방식
이건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감지하는 방식’을 말하는 문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훈련 중이다.
이제 글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감지했는지 드러내는 지도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쓰고, 다듬고,
심지어 GPT와 협업하면서까지
내 안에 떠오른 진짜 리듬이 맞는지를 확인한다.
결국 글은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를 감지했는지를 드러내는 도구다.
GPT가 아무리 발전해도,
감응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언어는 더 이상 ‘문장력’으로 구별되지 않고,
‘질문력’, ‘사유력’, ‘해석력’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당신이 쓰는 문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감지한 ‘패턴’이 진짜 글이 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일같이 제 글을 찾아와주시는 30여 명의 독자 여러분,
당신들이 있어 제가 매일 생각하고, 다시 글을 씁니다.
이제는 글을 잘 쓰는 시대가 아니라,
함께 감지하고 함께 사유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함께 느끼고, 함께 질문하는 이 흐름 속에서
저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진짜를 감지할 수 있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선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