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아끼고 침묵함으로써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는 자들을 볼 때마다, 밤새 고민하며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고 방향을 제시해보려는 나 자신이 참으로 촌스럽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이제 어디서도 진정으로 일에 혼신을 다해 몰두하며, 책임 있는 의견을 내놓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 모두가 누가 먼저 입을 열 것인가를 겨루는 눈치 게임에 빠져들었고, 그 안에서 간보기와 책임 회피라는 기술은 생존의 필수 덕목처럼 여겨진다.
총력을 기울이는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본질은 흐릿해지고 윗사람의 기호에 맞춘 Ux 디자인만이 전부인 것처럼 변질되었다. 사업의 본질이나 당위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얕고 피상적일 뿐이다. 조직의 중심에는 뜻을 모으려는 고민보다는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성과와 말뿐인 합의가 자리 잡고 있다.
무리를 이루고 떠들며 경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대세로 자리 잡고, 진지함과 깊이를 가진 이들은 점점 외면받는다. 소수는 고립되고, 집단의 목소리에 맞추지 못한 사람들은 왕따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제 교활함은 융통성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고, 진지한 성찰과 의지는 시대착오적 태도로 치부된다.
이런 시대가 두렵다. 사람들은 점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얄팍한 기술에만 몰두한다. 본질과 진정성은 설 자리를 잃고, 그 빈자리를 얄팍한 잔머리가 채우고 있다. 이 시대의 교활함은 단순히 개인의 생존 전략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전반적인 병리로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