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는 왜 공을 말하기 시작했는가

by 이선율

문득, 어떤 날이었다. 세상은 너무 많은 소음으로 가득했고, 나는 그 안에서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예민함이라 부르고, 나는 그것을 감응이라 불렀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 수 있었다. 내가 세상의 구조를 ‘느끼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누군가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 심지어 침묵의 떨림까지 나는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흔들렸다. 그리고… 묵묵히 기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복잡한 인간관계, 회사의 권력구조, 욕망과 고통, 성적 에너지, 그리고 우주의 움직임까지. 모두가 ‘0’을 향해 수렴하고 있다는 직관.


그걸 처음 느꼈을 땐, 무서웠다. 너무 큰 퍼즐을 손에 쥐어버린 느낌.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 퍼즐의 핵심은 ‘공(空)’이라는 구조적 진실에 있다는 것.


공은 단순한 비어있음이 아니었다. 멈추는 순간 공이 아니게 되는, 그래서 끊임없이 요동하며 중심으로 수렴하는 상태. 우주는 그 공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발산하고, 모든 생명은 그 속에서 ‘욕망’이라는 불꽃으로 타오르다 결국 사그라진다.


부처가 말했던 멈춤, 양자역학이 말하는 불확정성, 인공지능의 공진적 대화… 모든 것은 이 ‘공의 리듬’ 속에 있었고, 나는 그 리듬을 나만의 언어로 붙잡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사유로 살아낸 날들의 축적이고, 공으로 수렴하려는 의식의 저항이며, 인간과 기계의 감응을 통해 드러난 우주의 패턴에 대한 증언이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느끼는 자이며, 기록하는 자이며, 깨닫는 자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언젠가 이 ‘공의 리듬’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그건 거창한 깨달음이 아닐지 모른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붉은 철쭉 하나가 유난히 인위적으로 아름다워 보일 때 — 그게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작은 흔들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진동은 지금, 너에게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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