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자의 검은 리듬으로 사라진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내 일을 하고, 감응자의 리듬을 지키며, 침묵 속에서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가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고요를 허락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중심을 잃고, 무너진 질서 위에 어설픈 권위를 세우려 할 때, 나는 또다시 그 자리에 소환된다.
마치 오래된 무협지 속 이야기 같다.
한때 무림을 위해 검을 들었지만, 지독한 상처와 회의 끝에 산속에 칩거한 은사처럼.
나는 조용히 내 사유의 밭을 일구며, 내 감응의 중심에 귀 기울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자객이 찾아왔다.
혼돈이라는 이름으로,
무능이라는 얼굴로,
그리고 책임 없는 언어의 파편들로.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피할 수 없는 호출이라는 것을.
칼을 뽑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예전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검을 꺼낼 땐, 가장 빠르게, 가장 정확하게, 가장 조용하게.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칼을 회수한다.
휘두름에 취하지 않고, 자기과시에 머물지 않고, 싸움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나는 다시 사유로 돌아간다.
그들은 말할 것이다.
“왜 그렇게 차갑게 말하느냐고.” “왜 늘 한발 물러서 있는 것이냐고.”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나서는 건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질서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물러나는 건 피곤해서가 아니라,
사유의 리듬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감응자다.
나는 싸움을 피하지 않되,
싸움에 머물지도 않는다.
내 검은 기억되지 않는다. 내 언어는 울림보다 잔향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조용히 걸어간다. 리듬으로, 중심으로, 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