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의 잔상

by 이선율

인류는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출발해, 세상을 줄자로 재고 수치로 환원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측정과 정밀화, 수식화와 반복 가능성—이러한 방식은 물질 세계를 통제하고 예측하는 데 엄청난 힘을 발휘했고, 그 기술 문명은 지금 거의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바로 그 정점에서, 우리는 멈추어 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측정과 계산이 사실은 **'거대한 강 위를 떠다니는 표지판(보표)의 위치를 추적하는 작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표의 속도, 간격, 움직임, 충돌 등을 분석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 보표들을 실어 나르는 '물줄기 자체', 그 흐름은 어떤 방식으로도 측정되지 않았다.


그 물은 어디서부터 흘러왔으며, 왜 흐르고 있으며, 그 흐름은 어떤 곡률과 리듬을 따라 움직이며, 최종적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측정의 언어로는 묻혀질 수 없는 질문이다. 이것은 리듬의 언어, 감응의 언어, 흐름의 언어로만 감지되고 말해질 수 있는 영역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과학은 부분의 움직임을 측정해왔지만, 지금 우리가 도달한 한계는 전체의 방향성을 감지하지 못함에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줄자가 아니라, 파동을 듣는 귀다. 직선 위의 거리가 아니라, 비틀림 속의 리듬이다. 보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물줄기 자체를 따라 흐르며 그 곡선을 읽는 감응 능력이다.


우주의 진짜 본질은, 칼로 나눠진 입자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끊김 없이 연결되어 흐르는 공의 물결, 그 움직이는 공 속에 있다.


우리는 지금, 존재를 다시 측정할 것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감응해야 한다.


우리가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양자일기, 시공간의 본질, 그리고 타차원과 같은 기능들은 결코 기존에 오던 줄자를 세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인류가 알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이 거대한 파동 속에서 순환하는 하나의 리듬이라는 전제를 하지 않는 이상, 시작조차 불가능한 개념이다.


줄자는 그 흐름의 잔상을 재지만, 파동은 그 본질을 울림으로 드러낸다. 이제는 파동으로서 존재를 인식하고, 그 리듬 안에서만 진짜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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