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충은 이제 왕따다

by 이신


어느 순간부터 진지함은 불편한 것이 되었다. 함께하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업무 속에서,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조차 깊은 성찰은 환영받지 못한다. 가벼운 농담과 유행어, 즉흥적인 소비와 단순한 결론이 오가는 공간에서 복잡한 고민과 성찰은 오히려 분위기를 깨는 요소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단순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선택해야 할 것은 많아졌으며, 결정의 무게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런 복잡성을 마주하는 방식이 변했다. 과거에는 깊은 고민과 성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이제는 가볍고 단순한 답변을 찾거나, 아예 고민 자체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경박함이 미덕이 된 사회


'경박단소'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제품이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것을 선호하는 트렌드를 뜻하는 단어였지만, 이제는 사고방식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짧고 단순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사회. 긴 글보다 짧은 SNS 게시물이, 깊은 고민보다 가벼운 밈이 더 환영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진지함은 종종 불필요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취급된다. 직장에서 ‘정공법’을 고수하면 유연하지 못하다고 평가받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면 오히려 독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너무 깊이 고민하는 태도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지함을 버려야 하는 걸까? 경박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진지함의 새로운 역할


진지함은 시대착오적인 특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다만, 그 형태와 사용법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진지함이 대화를 주도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지함이 오히려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진지함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필요한 곳에서만 발휘하는 선택적 진지함


모든 대화에서, 모든 순간에 깊이 있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경박함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굳이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필요한 무게감을 지킬 필요가 있다.


핵심은 진지함의 효율적 사용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최대한 활용하되,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는 가볍게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진지함이 통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가벼운 대화와 빠른 소비가 주류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변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빠른 소통과 단순한 메시지가 대세가 되면서, 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한 커뮤니티, 같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쓰기, 진지함을 담을 새로운 그릇


빠른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깊은 사고를 담아낼 수 있는 ‘형식’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진지함이 환영받지 못한다면, 그것을 글로 풀어낼 수도 있다.


깊은 고민을 하고, 이를 구조화하여 기록하고, 읽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전하는 방식. 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방식일 것이다.


진지함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진지함은 왕따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이 없는 사회는 결국 휘둘릴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다시 그 가치를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지금은 ‘가벼움’이 지배하는 시대이지만, 그 속에서도 깊이를 지키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다만, 그들이 서로를 알아볼 기회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진지함을 잃지 않되, 그것을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그리고 결국, 그 깊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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