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은 직장”이라는 착각은 의외로 많은 문제의 근원이 된다. 상사가 되어도 부하직원이 되어도, 동등한 위치에서 일해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직장이라는 공간과 스스로를 혼동하기 쉽다. 직장이란 인생의 한 시기에 머무는 ‘생계수단’ 중 하나라는 사실을 온전히 자각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부터 이 공간이 곧 나 자신이 되어버린다. 내 의사결정과 일상은 점차 ‘회사 중심’으로만 돌아가고, 그것이 옳든 그르든 직장 속 사건들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내 일'로 생각하게 된다.
이때부터 다양한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난다. 권력 다툼이 거칠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하는 듯 인간관계가 꼬이기 시작한다. 단지 직장 내 업무 방식을 두고 벌어지는 의견 충돌이라면 건강한 토론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를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순간 합리화되면, 과잉충성이나 과잉기대가 쌓여 어느새 폭력적 괴롭힘으로 변질되곤 한다.
수 년, 수 십 년을 한 자리에서 지내다 보면, “이 직장은 나에게 보답해야 해”라는 보상 심리가 서서히 자리 잡는다. 그 마음에는 사실 ‘직장을 나 자신과 동일시한’ 오랜 습관이 깔려 있다. 조직이 커질수록, 부서가 세분화될수록, 내가 조직에 다한 공로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크면 클수록 “이만큼 했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는 역효과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분명 자기도 모르게 ‘망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인식이 일그러진 상태일 수 있다.
동시에,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지는 욕심 역시 한몫한다.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고, 승진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으며, 더 좋은 대우를 받으려 애쓰는 것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런 욕심이 원래 자리에서 벗어나 ‘메타인지 부족’이라는 허점을 타고 과열될 때다. 직장 내 계급적 위계와 단단한 시스템이 그것을 부채질한다. 결과적으로 상호 간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상대방을 도구로 여기는 극단적 태도가 심리적 괴롭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뒤로 물러나 “왜 이 공간에 있는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직장은 ‘일시적인 생계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이 곧 회사인 것처럼 구는 태도는 스스로를 지치게 할 뿐 아니라 타인까지 괴롭히는 결과를 낳는다. 일시적인 공간임을 인지하면 마음가짐도 훨씬 유연해진다. 오랜 시간 근무하고 있어서 애착이 깊어질 수 있지만, 그 애착이 결국 “회사 때문에 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해”라는 강박이 되어선 곤란하다.
조직생활에서의 조화는 결국 한 가지 통찰에서 출발한다. ‘직장은 내 모든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불필요한 망상과 과잉기대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로 동료들과 소통하는 길이 열린다. 이미 함께 일하는 동료나 상사가 이런 태도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바뀌는 것이야말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그들 역시 이 글을 읽는 순간, “나 또한 무심코 직장과 자신을 동일시하진 않았나?”라는 성찰을 시작할지 모른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신중하고, 때로는 단호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곳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살면서 거쳐 갈 한 장면일 뿐이다. 우린 영원히 그곳에 머물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잊지 않을 때, 망상과 과잉충성, 괴롭힘이 횡행하는 권력다툼의 덫에서 한 걸음 벗어나, 보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