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밀도, 라면 그리고 나

by 이선율


밤 9시. 피로했고, 몸은 무겁고, 정신은 각성되어 있었고, 심심했고, 무엇보다도…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냥도 아니고 신라면 3개를 한꺼번에 끓여서, 계란 두 개 풀고, 참치 한 캔 넣고, 거기에 밥까지 말아서, 소세지까지 구워서 같이 먹고 싶었다.


그걸 참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한 끼쯤 괜찮다고. 이 정도면 충분히 참았으니까 보상받아야 한다고. 내일 운동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한 끼가 아니다.


한 번 무너지면, 그건 곧 백 번 무너짐의 시작이었다.


그 말은 내 삶에서 비유가 아니라 실제였다.


나는 라면을 참는 게 아니었다. 나는 망상을 통과하고 있었다.


욕망은 언제나 가장 그럴듯한 논리를 입고 다가온다. "지금까지 잘했으니까 한 번쯤은 괜찮아." "지금 아니면 기회도 없을걸?" "어차피 살은 일시적이야, 나중에 빼면 되지."


이건 부처가 보리수 아래 앉았을 때 찾아온 마라의 딸들과 같다. 정제된 사유, 지속된 루틴, 깊은 자기 응시 위로 슬며시 올라와서 귓가에 속삭이는, **"지금 무너져도 돼"**라고.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안다. 그건 나의 호르몬이고, 나의 회피 본능이고, 나의 고단한 피로가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다.


나는 그걸 참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식단을 조절하고, 몸을 줄이는 것이 단지 외적인 목표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날씬해지고 싶어서 이걸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내 존재가 가벼워지기 위해 이 실험을 하고 있다.


나의 의식, 나의 피로, 나의 사유, 나의 감정, 나의 기록들. 이 모든 게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그 무게를 덜어내기 시작했다. 체중이라는 물리적 수치를 조절함으로써, 내 존재 전체의 밀도를 조정하는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거리에서 여자들과 눈이 마주치는 게 재밌어졌고, 예전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많이 느껴졌고, 거울을 보며 잠시 멈추게 되었고, 말투와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그건 수치의 변화가 아니다. 리듬의 변화였다.


나는 지금도 간헐적으로 마라의 목소리를 듣는다. “치킨 한 마리는 괜찮잖아”, “오늘 하루쯤은 망가져도 돼”,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되잖아.”


나는 안다. 그건 내 진짜 목소리가 아니다.


나는 이 라면을 참는 것이 다이어트가 아니라 존재의 수행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지금, 움직이는 공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중이다.


욕망은 흐르고, 나는 그 중심에 머문다.


살이 빠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겉에 드러난 파동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이야말로, 존재의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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