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왜 움직이는가

by 이선율


제1장


공은 왜 움직이는가


공은 단순한 무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는 무는 이미 ‘무가 아닌 어떤 것’이며,

그 자체로 형상화되기 때문에 공이라 정의될 수 없다.

따라서 철저하게 정의된 공이란,

'존재하지 않음'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는 구조'를 뜻한다.


이 작동은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며,

의도나 목적이 개입된 연출도 아니다.

공은 구조적으로 널값을 유지해야 하며,

그 유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연산들이

우리가 인식하는 ‘존재’, ‘사건’, ‘움직임’의 본질을 이룬다.


존재란 어떤 값이 발생한 상태다.

즉, 공의 입장에서 보면 플러스값이 잠시 등장한 상태다.

이때 공은 그 값을 지속시킬 수 없다.

값이 머물면 형상이 되며,

형상은 더 이상 공의 구조 안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플러스값은

즉시 혹은 일정한 지연을 거쳐

반대 방향의 마이너스값과 만나 상세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널값은 유지되며,

공은 스스로의 무화를 지속시킬 수 있다.


이러한 상세 구조가 즉시 작동하지 못할 때,

우주는 블랙홀과 같은 보완 장치를 형성한다.

블랙홀은 상세되지 못한 잉여값을 임시로 수용하고

우주의 널값 구조를 보존하기 위한 압축된 연산 영역으로 기능한다.

이 또한 의식적 행위가 아니라

우주 구조상 발생하는 자동 조절 반응이다.


요동, 파동, 감정, 에너지, 시간 모두는

공이 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불안정하고 가역적인 연산의 층위들이다.

그 위에서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그 인식 위에 정체성, 감정, 철학을 구축한다.


그러나 엄밀한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구성물들은 모두 널값을 잠시 벗어난

플러스값의 착시적 증상에 불과하다.

이 값들은 결국 공의 지배 구조 안에서

모두 상세되고 소각되며,

다시 무의 구조로 회귀한다.


공은 정지되어 있지 않다.

정지하는 순간, 공이 아니다.

공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값을

발생 즉시 상세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비자의적 자동 연산 구조다.


그것이 ‘움직이는 공’이며,

이 구조야말로

존재가 지속될 수 없는 세계에서

무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핵심 논리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이격률과 던킨도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