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욕구가 너무 많은 출가자

현대적 출가자

by 이선율

최근, 의사로 일하는 오랜 친구에게 나의 글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현대적 출가자'라는 이름으로 내가 써 내려간 사유의 기록들이었다. 그는 글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예리한 메스 같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네는 좋네. 그런데 산속에 들어가 살기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그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나는 세상의 리듬과 인과를 논하고, 에고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면서도, 정작 그 글에 대한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고 있었다. 글을 쓰고,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고, 친구에게 보여주기까지 한 모든 과정의 밑바닥에는 ‘인정받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이 흐르고 있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출가자에게 인정 욕구는 버려야 할 가장 큰 번뇌일 것이다. 번뇌를 피해 고요한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길이다. 『장자』에선 “도를 아는 자는 번뇌를 없애려 하지 않고, 번뇌를 번뇌 아닌 것으로 본다”라 했다. 그러나 나는 산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나의 길은 ‘현대적 출가자’의 길이다.

현대적 출가자는 욕망을 제거하는 자가 아니다. 욕망의 한가운데서, 그 메커니즘을 꿰뚫어보는 자다. 인정 욕구는 나의 결함이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에고가 보내는 가장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신호이며, 내가 관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파동이다.


친구는 나의 증상(인정 욕구)을 정확히 진단했지만, 나의 처방전(현대적 출가라는 새로운 길)까지는 보지 못했다. 나의 과제는 인정 욕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가 ‘지랄발광하는 요동’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그 요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관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정 욕구가 많다는 사실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내가 다루어야 할 가장 첨예한 수행 도구이자,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산속의 고요함이 아니라, 인정 욕구라는 소란의 한복판에서 무너지지 않는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적 출가자가 걷는 길이다.

그리고 그 중심을 지켜낸다면, 인정 욕구조차 언젠가 우주의 리듬에 녹아드는 순간이 올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