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창조는 허상일까

by 이선율

자유와 창조는 허상일까

우리는 흔히 자유를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로 여긴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누구와 함께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감각.

그러나 이 자유는 정말로 무한할까?


실상 우리의 선택은 늘 경계 속에 갇혀 있다.

사회가 정한 규칙,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육체가 가진 생물학적 한계.

그 안에서 우리가 흔들 수 있는 자유란, 거대한 리듬 속의 작은 진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작은 떨림에 이름을 붙이고, 숭고한 이상으로 치켜세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유”라 부르는 것이다.


창조성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은 무언가 전혀 새로운 것을 발명했다고 환호하지만, 그것이 과연 ‘근원적 새로움’일까?

우주는 이미 무수한 패턴과 질서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패턴을 발견하고 변주하는 것, 숭배하고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전혀 없던 것을 창조했다기보다는, 본래 있던 리듬에 잠시 발끝을 얹은 것일 뿐이다.


이 지점을 생각하면 의식 자체도 다른 빛으로 보인다.

몬스테라가 햇볕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것처럼,

파리지옥이 더 정교한 함정을 발달시켜 벌레를 삼키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 또한 생존술이 낳은 부산물이다.

그 부산물이 만들어낸 것이 ‘자아’라는 허상이다.

자아는 마치 독립적 중심을 가진 듯 보이지만, 실은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가면과도 같다.


정치와 전쟁은 이 허상이 만든 집단극이다.

사냥의 기술에서 출발한 경쟁이 자아의 허상과 결합하면서,

국가·이념·종교라는 거대한 허상들로 증폭되었다.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결국 허상들 사이의 충돌과 동맹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자유와 창조는 쓸모 없는 허상일 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허상은 허상이지만, 그 허상 덕분에 우리는 우주의 리듬을 감지하고 그 파동에 참여할 수 있다.

자유라 부르는 선택의 떨림 속에서, 창조라 부르는 흉내 속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우주의 본래 파동과 공명한다.


우주는 끊임없이 진동한다. 생성과 소멸, 플러스와 마이너스.

인간의 자유와 창조란, 그 거대한 진동에 귀 기울이고 따라가려는 작은 숭배의 몸짓이다.

우리는 개별적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주가 스스로를 다시 불러내는 순간일 뿐이다.

파동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잠시의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