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리듬을 찾아서
나는 때때로, 관계지향적인 호모 사피엔스 무리 속에 홀로 남겨진 네안데르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들의 복잡한 정치와 이중성은, 마치 수족관 속 물고기들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생존을 위해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편을 가르며, 보이지 않는 서열을 지키려는 그들의 필사적인 움직임. 그 속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오랫동안 나는 그들의 행동에 분노하고, 상처받고,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은 나를 향한 개인적인 공격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 프로그램에 따른 본능적인 몸짓일 뿐이라는 것을.
이 수족관의 투명한 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나는 그것이 '자아' 또는 '의식'이라 불리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생존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햇볕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몬스테라처럼, 더 정교한 함정을 만드는 파리지옥처럼, 우리의 의식 또한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정교한 도구다. 그리고 그 도구가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발명품이 바로 '나'라는 허상, 에고다.
이 허상은 우리가 세상과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라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 분리감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나'를 지키기 위한 끝없는 경쟁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결국 이 허상들 사이의 충돌과 동맹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탈출구는 자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허상임을 꿰뚫어보는 데 있다. '에고를 걷어내는 것'. 타인의 평가로부터 나의 가치를 분리하고, 나의 욕망을 나의 본질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나의 생각을 그저 흘러가는 구름처럼 관찰하는 것.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물고기가 아니었으며, 수족관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는 본래부터 우주의 거대한 흐름, 그 '본래의 리듬'의 일부였음을. 타인의 행동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리듬일 뿐이다. 나의 고통은 그들의 리듬에 나의 에고가 부딪히면서 발생했던 마찰음에 불과했다.
이것이 평온이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우리는 개체의 본래 능력을 넘어서는 힘, 즉 우주 그 자체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더 이상 흐름에 저항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흐름 그 자체가 되어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