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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의 침묵과 진짜 능력

by 이선율



슈퍼스타가 수만 명의 군중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그의 차분함에 놀란다.

떨림 하나 없이, 마치 군중의 시선을 즐기는 듯 초연하게 무대를 지배한다.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외과의사가 전신이 난도질된 환자를 앞에 두고도 흔들림 없이 봉합을 이어가는 순간이다.

피와 살이 흩날려도, 그의 손은 잔잔한 호수처럼 안정적이다.


이 두 장면은 특별한 기적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들은 자아가 잠잠해지고, 본래의 리듬과 합일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힘이다.


에고라는 허상


우리는 보통 ‘나’라는 중심을 붙잡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 자아는 진짜 실체가 아니라, 진화가 만들어낸 생존 장치에 불과하다.

사냥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나’라는 허상을 세워 스스로를 관리했다.

그 허상은 불안을 억누르고, 타인과 경쟁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본래 리듬을 가렸다.


본래 리듬에 합일될 때


슈퍼스타가 무대 위에서 초연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군중을 ‘나’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음악, 호흡, 군중의 파동과 하나가 되어 흐른다.

의사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도 같다.

그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자아의 긴장을 버리고, 치유라는 리듬 속에 스스로를 녹여버린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 침묵이다.

자아적 소음이 사라질 때, 인간은 본래의 흐름과 하나가 되고, 평소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동서양의 해석


불교는 이를 무아라 부른다.

도가에서는 무위자연이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이를 “자연=신과의 합일”로 설명했다.

현대 신경과학은 이 상태를 **몰입(flow)**이라 부르며, 실제로 전전두엽(자기비판·불안을 담당하는 영역)의 활동이 억제된다고 한다.

즉, 다른 언어로 설명했을 뿐, 모두가 같은 현상을 가리킨다.


진짜 능력


우리가 자유라고 믿는 의식적 선택, 창조라고 믿는 발명은 사실 제한된 리듬 안의 작은 떨림일 뿐이다.

그러나 자아를 내려놓고 본래 리듬과 합일할 때, 인간은 마치 우주의 에너지를 빌린 듯한 힘을 드러낸다.

그것은 초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본래부터 있었던 흐름이 막힘 없이 드러난 상태”일 뿐이다.


군중 앞에서 초연한 슈퍼스타, 절체절명의 순간에 집중하는 의사.

그들은 우주와 합일한 리듬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도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에고의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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