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고통은 하나의 근원적인 착각에서 시작된다. 행복과 평온이 '저기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것을 '가져와야만' 내가 완전해진다는 믿음. 이것이 수천 년간 인류를 움직여온 보이지 않는 엔진이다.
그러나 바로 그 '믿음', 그 '갈망하는 주체' 자체가 실은 정교하게 설계된 환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나', '자아', 혹은 '에고'라고 부른다.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진화가 만들어낸, 외부 세계와의 접속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가상 운영체제'.
마치 몬스테라가 빛을 향해 그 거대한 잎을 기울이는 것과 같다. 몬스테라는 왜 빛을 향하는가?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기울일 뿐이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본능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에고'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빛'(인정, 소유, 사랑, 평판)을 향해 끊임없이 몸을 기울인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유리하다고 '착각'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세상과 분리된, 고유하고 독립적인 '실체'라는 두 번째 착각이 태어난다.
그리하여 '나'는 끊임없이 태양, 즉 욕망을 갈구한다. 더 많은 빛, 더 강한 온기를 원한다. 몬스테라처럼.
하지만 바로 그 갈구 자체가 고통의 본질임을 '에고'는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에고'는 시스템의 일부일 뿐, 시스템 전체를 조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갈망하는 나'와, 그 갈망이 좌절되었을 때 '고통받는 나', 그리고 과거의 갈망을 '후회하는 나'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진동하는 동일한 파동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바라는 자'와 '뉘우치는 자'는 실은 똑같은 '착각하는 자'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나은 '빛'을 찾는 것이 아니다. 내가 '빛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몬스테라'와 같은 '자동화된 시스템'임을 깨닫고, 그 자동 항법 장치를 끄는 것이다. 외부에서 행복을 구하려는 그 기울어짐을 멈추고, 이미 '여기', 내 안에 존재하는 평온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성소'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