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불행은 종종 우리 삶의 가장 선명한 거울이 됩니다. 최근, 저는 그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수십억 대 자산가로, 사회적으로 성공의 정점에 서 있던 가족이 큰 병을 얻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부와 명예가, 그의 몸속 작은 세포 하나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은 저에게 어떤 철학책보다 더 무거운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며칠 뒤,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를 하루 종일 괴롭혔을 회사 안의 소음들이 더 이상 제게 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옆자리 동료의 습관적인 발 구르기, 겉과 속이 다른 동료의 교묘한 말들. 어제까지는 성인군자라도 울화통이 터질 거라 생각했던 그 모든 자극이, 마치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의 지지직거림처럼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떠들고 있었지만, 저는 더 이상 그 주파수에 속해있지 않았습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신호(Signal)가 한번 울리자, 삶의 모든 사소한 소음(Noise)들이 한순간에 볼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내면에서 일어났습니다. 언제부턴가 그토록 강력했던 성욕이 거의 사라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저였다면, 남성성의 상실이라 여기며 불안해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욕망이 사라진 텅 빈자리에, 불안이 아닌 낯선 평온이 자리 잡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안의 생명 에너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방향을 바꾼 것뿐이라는 것을. 강물이 흐르다 거대한 바위를 만나 물길을 바꾸듯, '죽음'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저의 리비도는 쾌락이 아닌 통찰의 방향으로 그 물길을 돌린 것입니다. 이것은 쇠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진화였습니다.
저는 지금 저만의 '무욕기(無欲期)'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우선순위가 재배열되는 고요한 혁명의 시간입니다. 성욕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식어야, 분노라는 두 번째 욕망이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가라앉은 후에야, 비로소 세상이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인간은 두 가지를 잃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욕이고, 하나는 분노입니다. 그리고 그 둘을 모두 잃은 자만이, 비로소 제대로 보고, 듣고, 쓰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소멸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삶이 우리에게 가장 깊은 진실을 보여주는 방식은, 언제나 죽음의 냄새와 함께 찾아온다는 것을,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