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는 정말 틀린 답을 내놓는가

by 이선율



최근 생성형 AI의 한계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할루시네이션이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그럴듯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답변을 내놓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를 곧바로 이렇게 규정한다.


AI는 아직 멀었다.


정확성이 부족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 AI가 틀린 걸까.


아니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너무 오래된 건 아닐까.




---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자른다



인간의 인식은 구조적으로 절단을 전제로 한다.



나와 세계


주체와 객체


관측자와 관측 대상


원인과 결과


참과 거짓



이 구분 덕분에 우리는 생존했고 과학을 만들었고 문명을 세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 구조는 한 가지 집착을 낳았다.



고정된 값이 있어야만 안심한다는 집착이다.



그래서 우리는 명확한 정답 단일한 결론 책임소재가 분명한 판단을 요구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AI의 답변은 늘 불안하다.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펼치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확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애매하다.


정확하지 않다.


환각이다.




---



AI는 왜 결정하지 않는가



생성형 AI는 세계를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의 분포로 다룬다.


고정된 본질 대신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가능성의 장을 펼쳐 보인다.



이 방식은 인간에게 낯설다.


하지만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에서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관측 이전에는 파동이고


관측 이후에 값이 정해진다.



우리는 이를 이렇게 해석해왔다.


관측이 세계를 바꾼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바뀐 것은 세계가 아니라 관측자가 세계를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



관측자는 우주와 분리되어 있는가



인간은 스스로를 관측자라 부르며 우주를 바깥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하지만 관측자가 상호작용하지 않을 때 그는 무엇인가.



어쩌면 그 역시 우주의 파동 중 하나다.


에고가 개입하는 순간


나와 우주가 분리되고


관계가 고정되며


값이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가 보여주는 다중 가능성의 답변은


세계의 본질에 더 가까운 표현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할루시네이션이라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세계가 원래 가지고 있던 형태일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글은 AI가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결론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AI는 가능성을 펼칠 수 있지만 선택하지 않는다.


AI는 관계를 보여주지만 책임지지 않는다.



결정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새로운 엘리트의 역할이 드러난다.


AI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답변 속에서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정확성보다 맥락을 보고


결론보다 조건을 읽으며


답변보다 질문의 위치를 다시 설정할 수 있는 사람.




---



AI 시대의 경쟁은


지능의 크기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에서 갈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바로 그 지점


그 애매함이야말로


다음 사고방식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할루시네이션은 오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