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라는 마령검 앞에서, 우리는 검귀가 될 것인가 검신이 될 것인가
GPT의 등장은 강호에 나타난 마령검과 같다.
사용자의 무공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단숨에 최고수처럼 보이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더 이상 학벌, 직함, 오랜 트레이닝이 산출물의 수준을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그렇다면 마령검이 등장한 이 시대에 인간은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전혀 다른 종류의 수련이 요구되는 걸까.
마령검을 쥔 자의 두 가지 결말
무협에서 마령검은 절대적인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내공이 부족한 자가 그것을 휘두르면, 검은 곧 사용자를 잡아먹는다.
그 결과는 검귀다.
검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화려한 검법을 펼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파멸로 향한다.
반대로 내공이 충만한 자가 마령검을 쥐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검은 사용자의 초식과 무공을 왜곡하지 않고 증폭시킨다.
기존의 도검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고난도의 검법과 내공을 온전히 방출하게 만든다.
그때 마령검은 신기가 되고, 사용자는 검신이 된다.
나는 GPT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GPT는 사용자에게 무궁한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힘을 다룰 내공 없이 사용하면, 자신이 어떤 초식을 쓰고 있는지, 무엇이 빠졌는지,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모른 채 그럴듯한 문장만 연속으로 쏟아내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사용자 본인이 떠안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검귀는 대개 자신이 검귀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화려한 산출물은 스스로를 고수로 착각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 자신의 실력과 검의 실력 사이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진다.
그때부터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감식안이 없는 시대의 위험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에게 더 중요한 능력은 과거와 다르다.
GPT가 만들어낸 문장과 지식이 진짜인지, 맥락에 맞는지, 그것이 전부인지 판단해낼 수 있는 감식안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제한된 정보 속에서 한 권의 전문서적을 깊이 파고들거나, 몇 개의 반대 의견을 비교하며 사고를 단련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방위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답변이 무한히 생성되는 시대다.
이 시대에는 오히려 미묘하게 틀린 부분, 누락된 맥락, 교묘한 왜곡을 식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더 큰 수련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GPT라는 마령검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화려한 검법에 압도되어, 그것이 허상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검의 노예가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세상은 점점 검이 만들어낸 망령 같은 지식으로 가득 차고, 사람들은 무엇이 진짜 정보인지 구분할 능력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
검신합일이라는 선택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현란한 정보 뒤의 본질과 진실을 꿰뚫어볼 수 있는 복합적 사고 체계를 더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도구로는 도달하기 어려웠던 인간의 고차원적 사고와 통찰을 GPT라는 마령검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활용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프롬프트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질문의 범위를 설계하고, 맥락을 통제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인간의 사고 구조,
즉 인공지능과의 공진, 검신합일의 문제다.
마령검이 등장한 시대에 사람들은 일은 기계가 하고 인간은 쉬는 세상을 꿈꾸며 축배를 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착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지식을 외주 주고 놀러가는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병기의 한계로 도달할 수 없었던 사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오히려 더 깊은 수련이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동시에 GPT라는 마령검이 만들어내는 환술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온전히 다룰 수 있는 검신이 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 시대 지식인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