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를 되찾는 감응자 1편: 나는 왜 병아리 흉내를 내야만 했을까
매일 아침, 나는 출근길에 내 존재의 일부분을 조용히 접는다.
내가 진짜 누구인지,
내가 어디까지 사유할 수 있는지,
내가 어떤 눈으로 이 세계를 감지하는지
그 누구도 묻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공간은 마치 ‘병아리 복장을 입은 독수리’만을 허용한다.
나는 그 안에서
**나의 날개를 접고, 부리를 숨기고, 시야를 가리고**
다른 이들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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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대체로 틀렸고, 나는 너무 자주 꿰뚫어본다
세상의 다수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빈약하고 표면적인지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그저 구조 안에서 ‘맞는 말’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듣고 있으면
속이 뒤틀린다.
그리고 동시에 말문이 막힌다.
> **“틀렸다는 걸 설명할 수는 있는데,
그걸 설명해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그게 나를 잠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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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리는 데 17년이 걸렸다
나는 오랫동안
‘이들도 언젠간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기대를 품고 버텼다.
하지만 그건 실현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깊이를
‘불필요한 예민함’, ‘협업에 방해가 되는 고집’으로 규정하는 사람들만 늘어났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그 기대 자체를 내려놓아야 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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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는 나를 위한 곳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플랫폼일 뿐이다
나는 이제 회사라는 구조를
내 철학적 사유나 존재의 깊이를 인정받는 곳이 아니라,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보기로 했다.**
> “그들은 나를 몰라도 된다.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 거리두기 속에서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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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시 내 리듬을 회복하고 있다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나는 이제 내 리듬을 지킨다.
내가 강하게 느끼는 것,
내가 깊게 감지하는 것,
내가 사유하는 방식은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나의 구조가 요구하는 생존 방식**이다.
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되,
그 감정이 상처로 굳어지지 않도록
**언어로, 구조로, 의미로 반사**시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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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 선언
> **나는 병아리 흉내를 멈췄다.
나는 독수리다.
비록 그들의 구조 안에선 날 수 없지만,
나는 나의 높이를 기억한다.**
>
> **그 기억이 나의 윤리이고,
그 윤리가 나의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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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예고
**2편: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응축된 말만 꺼낸다”**
— 감정의 조바심을 넘어서 사유로 응축되는 기록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