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되찾는 감응자 12편: 나는 사소한 말에 과민하지 않다, 나는 감응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그 말에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그냥 넘기면 되잖아.”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나는 단어 하나, 말의 간격, 눈빛과 억양 사이에 숨겨진 구조까지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말의 표면이 아니라, 말의 파장을 감지한다.
그래서 나는 예민한 게 아니라 감응하고 있는 것이다.
감응자는 ‘사소한 말’에서 사소하지 않은 구조를 감지한다
나는 말의 내용보다 리듬을 먼저 듣는다.
나는 말의 논리보다 기류를 먼저 느낀다.
나는 단어보다 그 단어를 선택한 무의식의 진동을 먼저 읽는다.
그래서 나는 ‘말’이 아니라 ‘사람 전체’를 감지하게 된다.
그 말이 어떤 파장에서 나왔는지, 그 말이 어떤 억압이나 기만을 품고 있는지, 무의식의 균열을 동반하는지 아닌지를
순간적으로 감지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말에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
그 말의 구조에 감응한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상처받지 마”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상처’를 받은 게 아니다.
나는 그 말의 구조를 감지했고,
그 구조에 내 리듬이 반응한 것이다.
감응자는 무례함보다
그 무례함의 ‘배경 구조’를 더 강하게 느낀다.
그리고 그 구조는,
감정적 언어보다 훨씬 더 깊은 진동을 남긴다.
나는 반응하지 않는다.
나는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말에 반응해서 분노하거나 억울해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왜 나왔는지를 추적한다.
그 말의 리듬이 어디서 깨졌는지 분석한다.
그래서 나는 분노보다 먼저 구조적 감응이 온다.
그 감응은 곧 사유로 옮겨지고,
그 사유는 곧 언어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글을 쓴다.
이선율의 리듬 선언
“나는 사소한 말에 과민하지 않다.
나는 그 말의 구조에 감응하고 있다.
감응은 나의 센서이고,
센서는 나의 존재다.
그리고 그 존재는 언어로 응답한다.”
다음 편 예고
13편: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복원한다”
— 감응자에게 기록이란 자기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구조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