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5-이간질

일태기

by 송사리

"기자님, 지금 뉴스를 보면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하고, 중동에서도 계속 소식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매출 이야기가 나오자 점잖게 생긴 대표님은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였다. 현재 개발하고 있는 치료제가 미국에선 전략물자 품목에 속해 신약 승인만 되면 매출이 일정 수준 보장된다고 자신하면서다. 세계 최강 킹왕짱 미국도 전략물자로 면역치료제를 비축하는데, 현재 무력충돌을 겪는 나라들도 우리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단, 승인만 난다면.


집중력이 떨어진 나는 대표님의 말을 끊고 말았다.


"누군가 다투면 제일 좋아하는 직업이 저는 기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꼭 그게 아니었네요??"


물론 긴장을 풀기 위해 던진 농담이지만, 바쁜 와중에 시간 내주신 대표님한테 퍽이나 할 소리다. 인터뷰를 주선한 담당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분께 고개 숙여 사과를 드려야 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이동도 어느덧 3개월 반. '일태기'가 길어지고 있다. 생소한 동네에서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을 치고는 있는데, 딱 냇가 송사리의 퍼덕임일 뿐.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치고 하기 싫고, 매일 아침 눈뜨면 "맨날 이렇게 살아야 할까?"란 자문자답부터 나온다. 그래도 많이 밝아져서 이 정도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하면 역시나 발제다. 나는 매일매일 기사를 써야 하는데, 이 동네는 신약 개발하는 데 최소 10년은 잡아야 한단다. 그 마저도 모두 성공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래도 제품은 꾸준히 출시됐던 반도체 출입 시기가 그리워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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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신약 개발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내용으로라도 기삿거리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홈페이지란 홈페이지는 다 뒤지는데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현타'가 든다. 어릴 땐 버버리코트를 입고 마이크를 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잠옷 입고 밤늦게까지 노트북을 안고 살아야 할 줄은 몰랐다.


와중에 관심은 받고 싶어서 문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누군가 팁을 줬다. 그럴 땐 이간질만 한 게 없다고. 조언을 듣고 난 후부터 어떤 기사든 정부 부처 간 칸막이 문제로 환원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정작 우리 칸막이가 더 두껍고 단단한 데 말이지. 예전 출입처에서 기사 잘 보고 있다고 연락이 올 뿐, 새 출입처에선 묵묵부답. 무관심에 더더욱 부정 이슈 없나 홈페이지를 뒤지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 다투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언론계에 잠시 회자된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매체에 단 두 명이 합격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는 썰. 그 역시도 발제와 보고에 목마른 수습이었는데, 맡고 있는 라인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 자신에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발제가 뭐라고 인명 관련 사안에 눈이 휘둥그레져야 하는가. 미련 없이 떠났다는 후문이 전설처럼 회자된다.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을 인물이라면 뭘 해도 잘할 사람이지 않은가. 그런데 주변에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는 죄책감에, 억지로 버티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공무원, 대기업 직장인, 전문직 등 행복하지 않는 표정으로 일터로 향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당장 나부터도 그렇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탈출 만이 답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바깥은 여전히 춥고, 월세에 엄마 용돈에 돈 나갈 일은 무지 많다. 내가 하는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하나씩 찾아보는 게 최선이겠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내일은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빨리 창을 닫고 업무용 노트북을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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