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4-어바웃 타임

자격지심

by 송사리
common?quality=75&direct=true&src=https%3A%2F%2Fmovie-phinf.pstatic.net%2F20131105_208%2F1383633299452aFkEy_JPEG%2Fmovie_image.jpg 영화 <어바웃 타임> 2013.

남자 나이 서른한둘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말이 주는 의미는 자명하다. 20대의 나는 이룬 게 하나도 없다는 것. 간절한 꿈, 원하는 직장. 당연히 누구나 갖고 있지. 하나둘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일 뿐. 가족들 고생시키는 것 생각도 안 하고 내 꿈만 바라보며 시간 흘려보낸 것만큼 미련한 게 어디 있을까. 정작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정신이 없어, 고생했던 20대가 떠오르지 않아 허탈할 따름.


꼴랑 3년 반 버틴 직장생활은 내 실패를 부정하기 위한 사투의 시간이었다. 점심미팅을 하면 나는 상대가 묻지도 않았는데 야쿠르트 회사와 보일러 회사를 다녔다고 먼저 얘기를 꺼냈다. 정말 벼랑 끝에서 그 회사들이 나를 구제해줬고 타의로 두 회사들을 나가게 됐으면서, 마치 내 발로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구라'를 쳤다. 실체가 탄로날까봐 식탁 아래선 다리를 후들들 떨면서. 어쩌면 다들 내게 속아준 척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료 기자들과는 어울리지도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꼭 서로의 입사년도를 묻게 된다. 일종의 서열정리인 셈. 나한테 불리할 짓을 왜 하나.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더는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자들 수십명이 동행하는 해외 출장을 가게 됐거든. 원활한 출장을 위해 단체카톡방을 팠는데,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대화 상대 프사는 죄다 물음표가 떠있었다. '카톡 친구'가 아님을 뜻하는 그 표시. 나 그래도 6개월 출입했는데 대체 뭐 한 거지? 인천공항까지 왔는데도 낯가림이 올라와 돌아가고 싶었다. 그럼 지금 다니는 회사도 백수로 돌아가라고 할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 타야 했다.


정말 나 빼고 다들 구면이었나 보다. 다들 무리를 지어 다녔고, 나는 그저 구경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종합일간지와 유력 경제지 선배들에게 시선이 자꾸만 갔다. 이유는 뭐 말 안 해도 다 알지 않나.


가까이 지켜보면서는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나를 비롯한 전문지는 바이오라는 상대적으로 좁은 분야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소식, 일거수일투족, 야사 등을 매일매일 수집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이라는 거시적인 분야를 다룬다. 출고 기사 수는 적지만 대한민국 과학/산업계를 뒤흔들 깊이 있는 기사를 세상에 전달한다. 나는 내 능력이 부족에 그 어떠한 것도 해내질 못하고 있는데. 끝판왕 잡으러 가는 게임 캐릭터를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또다시 자격지심이 피어올랐다. 물론 나도 내가 속한 곳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그들은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또 더 깊이 있는 소식을 듣는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려웠다. 딱 그만큼의 거리만큼 나는 그 선배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어쩌다 말할 기회가 생기면 어버버거리고. 그냥 엉망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고르고 고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시청했다. 남자 주인공이 수가 틀릴 때마다 시간을 되돌리면서 원하는 바를 이뤄나가는 스토리인 것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 텐데.

KakaoTalk_20250624_225235832.jpg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공감하고 재차 보게되는 수원삼성 레전드 곽희주 인터뷰.


자연스레 내가 되돌리고 싶은 수많은 실패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실패한 짝사랑 연애의 기억, 그리고 20대를 날리게 한 수많은 면접들. 나도 장롱 안으로 들어가 시간을 되돌리고, 당황하지 않고 새로운 답변을 했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까. 그렇게 또 우중충한 감정을 마주했다. 여전히 나는 패배감에 젖어 살고 있으니깐. 비행기에서는 인터넷이 켜지지 않아 좀 더 빨리 꿈을 이룬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지 않아도 됐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공교롭게도 출장 이동 중 차 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길을 준비했었던 한 선배는 "20대 시절의 기억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남는다. 다들 "나는 마흔 살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20대 초면 좋았겠다"고 한 마디씩 보탰는데 말이지.


그 선배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이유는 20대 시절을 후회할 생각이 없을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보냈고, 또 뒤를 돌아보기에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주제넘게 추측해본다.


시선은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20대 시절 돌아가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걸 보면 딱 아쉬울 만큼 노력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 지에 대해 명확하게 계획한 게 없다. 당장 장가는 갈 수 있을까...


그 명확한 목표가 뭐냐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는 것이 고민이다. 직업적인 측면이더라도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 6개월 몸 담은 곳에 정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음...... 결국 내 상황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겁한 생각도 들고. 고민의 연속 또 연속이다.


30대의 나는 앞만 바라보는 멋진 사람이고 싶은데. 왜 세상에는 멋진 사람들이 많고 나만 못난 걸까. 흥! 글도 못 써 젠장..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20501-홀로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