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8-고백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 주저앉긴 싫어

by 송사리
KakaoTalk_20250708_212406929.jpg 정신줄 놓았다면서 인스스 올리려고 사진은 또 찍었구나.. 후...

"송사리씨, 암입니다"

2024년 2월 20일 오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치. 건강검진으로 시작해서 암 판정으로 귀결된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정신줄 놓으려다, 부장한테 전화해 마감부터 챙긴 일은 앞에서 다뤘다(20251127-라스페라 보러가기 https://brunch.co.kr/@sarisong/138. 기사 넘기고 병원 밖을 빠져나오고 나서 하늘만 바라보며 걷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내 인생은 왜 기구한 걸까.

화면 캡처 2025-07-08 212854.png 내가 좋아했던 축구선수... 고...기구...

단순히 병에 걸려서가 아니었다. 전날 밤 연애가 성사됐었기 때문. 하루 일과를 마치고 주고받는 술 사이로 서로 마음을 확인했고, 앞으로 행복하게 지내보자고 카톡으로 약속한 게 대략 12시간 전이었다. 근데 자고 일어나니 남자친구가 암 환자가 되어있었다. 이거 완전 연애사기, 위장 연애 아닌가. 내가 기사에 나오게 생겼다.


당연히 검진 결과에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병원간다고 이야기 자체를 안 했다. 근데 남자친구가 암 환자라니. 뭐라고 이야기하지. 그날도 퇴근하고 나서 잠시 카페에 앉아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2일차 연인이 그렇듯 우리는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바빴다. 허나 내 속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언제, 뭐라고 말하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당시 연인을 약속 장소로 보내고 말았다. 병력과 무관하게 나의 불찰로 얼마 안 가 헤어지고 말았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서, 크게 떠오른 생각은 역시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였다.


15년 전에 아빠가 갑자기 폐암 판정을 받아 허무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가 여전한 우리 가족이다. 특히 엄마의 아픔은 말할 것도 없고. 근데 혼자 살겠다고 집 나간 아들이 반년도 안 돼 암 판정을 받았다고 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직은 수술까지 네 달은 넘게 남은 터라, 천천히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런다고 방법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속만 착잡해 먹으면 안 될 술만 입에 댈 뿐.


그러다 불현듯 생각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매형이었다. 우리 가족이지만 때로는 피붙이보다 더 속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 매형에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혜안을 구하기로 했다. 다만 멍청하게 매형 근무시간에 다짜고짜 통화를 한 게 함정이지만.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매형..."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매형은 그래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면서, 방법을 잘 찾아보자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카톡이 왔다. 누나였다.


"송사리야. 아까 오빠한테 이야기 들었어. (중략) 지금은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잘 이겨낼 수 있을거라 믿어. (중략)많은 현실적인 고민들이 스쳐지나가겠지만 그래도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알테니 너의 건강과 행복만 우선 생각하자."


송금봉투도 함께 딸려왔다.


이게 가족이구나. 글을 쓰려고 카톡을 찾아보니 다시 울컥했다. 지금 30대 중후반인 2살 터울 형제·남매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어릴 때는 싸우기 바빴고, 수험생이 되니 내 앞길 찾느라 정신없었고, 군대 다녀오니 서로 또 살길 찾느라 여유가 없고.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서먹해져있고. 누나가 수년전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사실 가족행사 아니면 연락도 안 하게 됐다. 아무 소식 없으면 그게 잘 살고 있거니 하면서.


그럼에도 무심한 듯 동생 위해서 따뜻한 말과 용돈 건네주는 누나가 있어 (진짜 몇 년 만에) 멋있었다.


멋있는 건 멋있는 것이고 아직 엄마는 모르는 상황. 누나가 다시 나서줬다. 주말에 누나가 본가에 찾아가 엄마와 식사를 나눴고,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꺼냈나 보다.


저녁에 혼자 쓸쓸히 앉아있는데, 엄마 전화가 왔다.


처음엔 일부러 받지 않았다. 아들 걱정돼서 전화했을 것은 잘 아는데,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고 또 자신이 없어서.


아들 걱정됐는지 전화가 연거푸 걸려왔고, 결국 받고 말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는 엄마의 말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쉽지 않겠지만 잘 이겨내보자고. 서울 땅 아래서 세 식구가 각각 떨어져 살지만, 가족이 무엇인지 굳이 말하지 알 수 있던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50708_213709014.jpg 인미새...

그렇게 네 달 넘게 지나 2024년 7월 8일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당시에는 의정갈등이 최고조로 치솟을 때라 입원하는 그 순간까지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제 날짜에 입원을 하고, 수술날 아침이 밝았을 때 기분은 싱숭생숭했다. 군대 가는 거랑은 다른 기분이더라.


오늘이 2025년 7월 8일이니까, 수술한지 딱 1년이 지났다. 복직하고 또 일에 메여 살다 보니 내가 수술을 했었나 까먹을 때도 많다. 만나는 분들은 건강 괜찮냐고 걱정을 해주는데, 회사는 내 걱정 안 하고 일을 주고, 사실 나도 몸 관리를 소홀히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긴 시간 동안 하소연 들어주고, 걱정해주고, 수술 들어가는 날 아침까지 응원해주던 분들의 감사함은 잊지 말아야지.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또 정신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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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 주저앉긴 너무나도 싫어"

육지담 <ON&ON>


내가 좋아하는 가사 중에 하나. 10년 전에 나온 노래일 텐데, 가사를 볼 때마다 의미가 새롭게 와닿는다. 물론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수도 없이 주저 앉았지만,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어떻게든 무게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써야할 것 같다고 할까나. 이제는 내가 주저 앉으면 내 가족 억장도 무너진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물론 내 몸은 소중히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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