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8-활동반경

다시, 제주

by 송사리

대학생 때 방학 기간이 되면 동기나 선후배들 서너 명은 꼭 유럽 여행을 다녀왔던 것 같다. 네이트온(ㅜㅜ)에 꼭 티를 내면서 보름 가까이 지구 반대편 문명과 문화를 즐기는 이들. 당연히 부러웠다. 젊을 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여행 다니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나. 그걸 하나하나 실천하는 용기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다들 형편이 넉넉한가. 유럽까지 오가는 비행기 삯에 보름 동안 써야하는 식비, 체제비까지.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20대 초중반에게는 분명히 큰 돈. 30대 중반이 된 지금 봐도 큰 돈.. 어떻게 마련을 한 걸까.


최근 어디서 '짤'을 봤다. 20대 때 해외여행 경비가 거금으로 보이지만, 직장 다니면서 금방 메울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여행하고 다니라는 누군가의 충고. 그 이상의 인생의 뭔가를 얻는다는 말은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느낌이었다.


사실 누가 모르겠나. 알면서도 안 되니까 문제지.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20대 초반에는 항상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따라다녔다. 아빠가 갑자기 아프게 되면서 어린이집 선생님이던 엄마까지 병간호를 위해 덩달아 일을 쉬었기 때문. 맞벌이 부부의 소득이 갑자기 끊긴 것은 물론, 병원비로 써야할 돈은 또 막대했다.


20살 하반기부터 22살 8월 군대 갈 때까지 과외는 2~3개는 기본으로 하며 보냈다. 그래야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 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 남들 해외여행 가는 것 부러우면서도 나도 가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물론 과외비로 술쳐먹고, 택시타고 다니고, 흥청망청 쓰고 다니긴 했지만ㅜ


26살이 되어서야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세부 한번 다녀왔다. 큰 맘 먹고. 물론 친구들은 유럽여행 당연히 다녀와봤고, 세부도 자주 와봤는지 절경을 보고도 별 감흥을 못 느끼더라. 애써 안 신기한 척 하느라 힘들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어디 제대로 한번 다녀보지 못한 과거를 아쉬워하고 있다. 여름휴가를 냈는데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기 때문. 5일을 썼는데, 앞에 광복절 연휴와 뒤의 주말을 포함하면 최대 열흘을 쉬는 일정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송사리 기자님 해외 무조건, 꼭 다녀오시라고 조언을 건넸다.

KakaoTalk_20250818_212055863.jpg 지난 3월에 왔던 서귀포. 날씨마저 안 도와줘서 차 안에서 김밥 먹었다. 밑에는 떡볶이가 있다. 덕분에 허벅지 화상 입을 뻔...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여놓고 지금 제주도에 와있다. 다섯 달 전에도 2박 3일 머물렀던 제주도. 심지어 그때 묵었던 그 서귀포 숙소에 또다시 누워있다.


당연히 나도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는 생각으로 해외를 나갈까 고민을 해봤다. 결과적으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선 같이 갈 친구가 없다.. 친구가 없는 것은 내 사회성 부족이니까 누굴 탓할 순 없고.. 혼자 어디를 나가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많은 지인들이 일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다녀온다고, 삿포로와 오사카 등등 지역까지 구체적으로 짚어줬다. 하지만 그래도 혼자 가본 적이 없으니 내게는 미지의 세계,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우주정거장을 향해 날라가는 미국 NASA의 직원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은. 낯선 곳에서 말도 안통하고, 허둥지둥 진이 빠지는 것 자체가 상상만 해도 싫었다.


그리고 여행을 많이 다녀보질 못했으니, 여행의 묘미를 모른다는 점이 스스로에게 제일 한심했다. 3월 말에도 제주도에 와서 애월 카페에서 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40분 정도 지나니까 손이 핸드폰으로 자꾸 향했다. 그래서 이제 뭐하지? 경치는 잠깐이고 스스로에게 추억 남길 어떤 활동도 고민을 안 한 것이다. 정해둔 일정이 없으니 그냥 운전만 원 없이 하다가 왔다. 내가 P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후회한 순간이다.

KakaoTalk_20250818_212055863_02.jpg 혼자 여행 다니며 느끼는 어려움은 역시나 식사. '지역명+혼밥'을 검색하고도 들어가면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입이 짧지만 사이드 메뉴 굳이 하나 더 시키는 것은 덤.


고민 끝에 이번 휴가 테마는 '폐관수련'으로 정했다. 언제부턴가 일이 고되고 재미없고 지친다는 이유로 매사에 손을 놓기 시작했다. 그중 소홀히 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글쓰기. 뭐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데, 언제부턴가 손을 놓고 있었다. 결국 시간 내서 스스로에게 써야한다고 강박을 주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로 단절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인풋을 채우며 다시 창작의 의지를 불태우기로 다짐했다. 하나로마트에서 산 고등어회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우선 글부터 쓰고 있다.


돌아보면 제주도를 마음의 안식처를 삼은 것도 26살 때였다. 중간고사를 몰아서 치는 바람에 딱 사흘 여유가 생겼는데, 뭐할지 고민하는 걸 보던 친한 형이 제주도 가라고 눈앞에서 예약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지켜보는 바람에 비행기를 탔었다. 그때까지 혼자서 멀리 다녀본 적이 없었고, 운전조차도 익숙지 않던 때였기에 제주도 가고 싶다고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반강제(?)로 제주도에 오니, 나름 혼자 즐기는 여행의 묘미도 알고 운전도 확 늘었다. 이후 제주도는 틈만 나면 찾는 힐링 공간이 되었다.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충분히 즐길 꺼리가 많다는 사실을 대충 10년 전에 깨달았는데, 그 후로 발전한 게 없구나. 활동반경을 넓혀야겠다. 핑계 그만대고, 어디든 자신 있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근데, 내년 여름이 오긴 올까.. 일단 이번 휴가라도 잘 즐기는 걸로...

KakaoTalk_20250818_212055863_03.jpg 이번 휴가 목표 중 하나. 일출 보기.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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