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라스페라

by 송사리
화면 캡처 2025-01-12 223052.png

"미쳤어 엄마! 가출을 하려면 내가 해야지 왜 엄마가 해!!"


중년의 여성이 고급스러운 건물 앞에서 서성인다. 그 건물은 청담의 이태리 레스토랑 '라스페라'. 얼마 지나지 않아 고3인 유경이 다급히 찾아와 엄마를 야단친다. 고3인 자기도 가출을 하지 않는데 왜 사흘씩이나 연락이 안 되냐고. 안색이 안 좋은 엄마는 딸 유경을 끌고 라스페라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유경은 뿌리친다. 엄마가 돈이 어딨냐고. 제일 싼 걸로 먹어보면 되지 않냐고 되묻지만 유경은 결국 엄마를 끌고 집으로 향한다.


뒤늦게야 유경은 알게 된다. 엄마가 잠적한 이유가 말기암 판정 때문이라는 것을. 좀 더 정확히는 병원비 부담 때문에 유경이 대학 등록금을 못 낼까봐 가출을 했다. "언제 이런 데서 너랑 먹어보냐"는 엄마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에 남는다. 끝내 못 먹은 '걔중에 값싼' 파스타는 유경이 요리사를 꿈꾸는 계기가 된다.


여전히 회자되는 드라마 <파스타> 이야기다. 시한부 판정이라는 흔하디 흔한 드라마 소재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있을까. 그리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에 내게 벌어졌다.


"송사리씨, 암입니다."


정말이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투적으로 쓰던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지난해 12월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받은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물혹이 발견됐고, 추가 조직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아직 내 나이 서른넷. 분명 추적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할 텐데 이렇게 시간이랑 돈을 뺏겨야 해? 라는 투덜거림과 함께 대학병원까지 찾았다.


예상과 다르게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말았다. 아무리 상대적으로 덜하다지만 암은 암인 법. 눈앞이 캄캄해졌다.


경황이 없는 것은 내 사정. 교수님은 판독 영상을 보여주며 수술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빠르게 설명하셨다. 곧바로 채혈 검사와 CT 촬영을 해야 했고, 검사를 마치면 전문 코디네이터와 수술 상담을 끝내야 했다. 정신 줄을 놓고 싶지만 더더욱 그러면 안 되는 상황. 겨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나도 가출하고 싶어졌다. 졸지에 암환자가 됐는데 눈에 보이는 게 있겠는가. 하지만 두 글자가 머리 위로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바로 '마감'. 윤전기는 내 사정만 특별히 봐주지 않는다. 더구나 강원지역 폭설로 평소보다 강판을 30분 앞당기기로 한 상황.


핸드폰을 꺼내 부장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제가 암에 걸렸는데, 우선 최대한 빨리 기사 출고 해 지면에 지장 없게 하겠다고. 수술 상담실 앞에서 노트북을 꺼내 기사부터 써내려갔다. 와이파이가 빵빵한 병원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다섯 달 가까이를 환자이자 직장인 신분으로 보냈다. 2월 중순에 판정을 받았는데 흔히 말하는 '빅5' 병원인지라 가장 빠른 수술 날짜가 7월 초중순이었다. 더구나 판정 다음 날 전공의 사직 사태가 일어났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의정갈등은 더더욱 심화되며, 정작 내가 수술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성만 커져갔다. 뭐든 내 일이 되어야 공감 능력이 커지는 법. 거리로 나와야 했던 환자단체 심정이 이해가 갔다.


병가에 들어가기 전까지 '부상병력' 임을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또 아프다는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애썼다. 남들은 동의할지 모르겠다마는. 암튼 그럼에도 나도 사람이기에, 아픈 거 몰라주고 본인들 사정만 얘기하는 이들을 마주하면 속이 상했다. 어쨌든 직장생활은 직장생활이니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을 수도 없고.


그럼에도 내가 일을 손에서 못 놓고 이유를 종종 고민했다. 답은 간단했다. 돈 때문이다.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월세, 우리 엄마한테 보내는 용돈, 식비, 생필품 등 독립을 하고 나니 매달 고정비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대책 없이 쉬었다간 돈 없어서 골병에 또 걸릴 지경. 돈이라도 버는 현재가 더 나았다.


한 때는 내 꿈이 소중하다고 회사를 세 번이나 관뒀는데, 정작 내 몸이 아픈데 쉬질 못했다. 좀 서글펐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고, 두 달의 병가를 거쳐 9월 초 복직했다. 역시나 가장 먼저 들은 말은 "너무 일찍 돌아온 것 아니냐?"는 걱정 섞인 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이려다 겨우 참고 미소만 짓길 반복했다. 회사 규정도 규정이지만 역시 돈이 가장 컸다. 상기한 이유처럼. 또 어차피 돌아올 텐데, 휴지기가 길어졌다간 내가 잊히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도 컸다. 어떻게 개척한 취재영역인데! 그래서 군말 없이 출근했다.


그래도 쉬면서 결심한 게 있다. 제발 일과 나를 구분해서 살자고. 돌아보니 언제부턴가 자취방까지 일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들고 들어오는 내가 보였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병이 됐을 것이다. 이젠 좀 달라야 하진 않겠나. 허나 실패. 또다시 발제-마감-보도자료 처리-발제-마감-보도자료 처리를 쳇바퀴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쉬다온 것도 까먹을 정도로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


복직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일요일이었는데 도무지 침대에서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식은땀이 나고 크게 한숨 쉬기만을 반복할 뿐. 마땅한 발제거리가 없을 때 나타나는 마음의 병이었다. 벌써부터 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혼자만 노력한다고 기삿거리가 어디서 굴러오지 않는데. 그렇지만 윤전기는 돌아야 하고, 백지로 신문을 낼 수도 없다. 압박감에 구겨지는 나만 구겨지고 있었다.


연말이 되니 일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과외업무는 과외업무이고 기사는 기사. 와중에 새로우면서 '쎈 걸' 찾아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불똥이 떨어지고, 또 매사에 감정적으로 대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요즘 그랬고, 때문에 또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나는 말싸움을 못하는 것이지 우이씨.


어느덧 이 직장에서도 세 바퀴를 돌았다. 과연 나는 이 치열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해 참 많이 고민한다. 우선 몸부터가 버텨주질 못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내게 주어지는 업무 범위는 점점 많아질 텐데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코딩을 배워야 하나.


마음을 고쳐잡는다. 언제는 뭐 자신 있어서 하루하루 버텼나.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해보고, 정말 도저히 못 버티겠다면 그때 생각해보지. 다만 돈이 내 선택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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