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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Jun 24. 2019

ERROR

#$%ERROR^&!*?P-P-Peep



#$%ERROR^&!*?P-P-Peep 에러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것 같다.
개인적으로 시사성을 띄고 있는 매체의 역할은 그 현상을 보여주고, 꼬집고, 방안을 모두가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생각해보도록 한 가지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생각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것은 아닐까 싶을정도로 보여주는것만 읽히고 있다 생각한다.
얼마전 어떤 기사의 댓글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예로 들어 인성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다는것이 기정된 논리처럼 갑론을박 중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 처럼 부자는 착하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좀 충격적으로 와 닿는다. 그렇다고 부자는 모두 악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요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한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인성’마저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것.
영화의 리뷰를 하며 생과 사의 문제도 ‘부’로 결정된다고 말해주는듯 싶었다는 감상을 적은적이 있다. 그만큼 지금을 살아가는데 있어 ‘부의 축적’은 어쩌면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부의 유무’로 나누는것은 너무나 혼란하다. (극대화 시켜 문제제기를 하는것이 아닌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 현실적인 문제들)
물론 ‘부’를 가지고 태어나는것은 많은 부분에서 이점이 된다는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고. 바로 그 곳에서 벌어지는 빈부 격차의 간격을 좁히는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라고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기생충이라는 영화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조각나는 순간이다. 인성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는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것을 받아들여 행동하느냐에서 나뉘는것이다. 또한 시대에 따라 다수의 악함이 선함이 될 수도 있고 선함이 악함이 될수도 있다. 기준을 두는것 조차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단지 ‘부’의 유무로 판단하고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다는것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그렇게 받아들이는것 또한 이해가 안 가는건 아니기에 더욱 공포스러운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 그 모습을 풍자하며 꼬집는 상황을 단지 나의 짧은 생각으로 과도하게 부풀리는것은 아닐까 걱정도 들게 하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상황. 조금 더 다양하고 색다른 시선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진다.
 


#에러 #빈부격차 #시대적_양상
#그럼에도_부로_모든걸_나눌순_없다
#초현실적인_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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