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삶과 죽음
2019. 6. 16 지난 일요일, 문화를 공유하고 가치를 교류하겠다며 계획했던 모임이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한 총 4명의 인원. 각기 다른 환경에서 쌓아온 가치관. 난생 처음보는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모여진 관심사 ‘존엄한 삶과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존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존엄한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이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나침반” = 나의 가치관.
흔히들 가치관은 나를 중심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렇지만 모임원 중 뜻밖의 의견도 나왔다. 나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을 같은 시선으로 봄으로써 가치관을 재정립한다는 의견. 존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존엄한 삶과 죽음을 행할 수 있으며, 그 수단은 타인에게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경험은 모두 다르다는 것은 타인의 경험도 모두 다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범’의 기준 또한 일정한 통계를 통해 다수결의 법칙으로 정해진다.
그렇다면 타인의 잣대가 없다면 나의 중심 또한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은 쟁취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한 나와 타인의 적당한 시선 분배를 연습할 필요가 있다.
그 연습의 핵심은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나약하며,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나약함을 질책하고 타인의 악의 가득한 비난을 견뎌내라는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 그어놓는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엄함을 침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두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했다. 힘듦을 인정하지 않고, 실패를 존중받지 못하며, ‘왜’라는 질문을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하는 흔하디흔한 경험이야말로 인간의 존엄함을 깎아내리는 행위 아닐까?
나의 경험으로 쌓아온 가치관이 과연 옳은지에 관한 의구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구심을 나와 다른 타인과 나눔으로써 간지러움을 긁는 연습. 자기 합리화가 자기방어의 가장 쉬운 방법이라 하지만, 자기 위안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실패를 존중하고 개인의 성급한 일반화를 늦추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가장 시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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