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말의 위험

이간질로 인한 결과

by 김영서

이간질


처참한 나의 인생은

이간질의 증명이
가득 담긴 삶이다.

이간질의 위험을
너무나 많이 체험했으니깐,

나의 삶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는 늘 술에 취했다.

학교에 갔다올 때마다

어머니에 대해

나의 마음 속에다 이간질을 시킴으로

나는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명절 때마다

나는 여자 친구가 없는 것도 모르고

사촌 여동생과
다정히 노는 것에 대해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유교적 사고를 심어

사촌 여동생과 멀어지게 했다.


내가 고교생 때

마음에 교만이 가득 박힌
숙부의 이간질이 있었다.

내게 "왜 공부 안하고 싸돌아 다니냐!"

그 이간질로 인해

사촌동생들과 친척들과 마음에 담을 쌓았다.


내가 25살의 여름 때,

노모는 전과자와 재혼을 할려고 했다.

아버지와 첫 이혼을 했기 때문에,

나는 이모들에게 이에 부당함을 알리려고

이모들과 노모의 상호 이간질이

나는 육신의 고향을 잃어 버렸다.


노모는 아버지와 재혼 후

내가 결혼 후에 아내와 분가하기 전

다시 아버지와 이혼한다고 또 크게 싸우고 나서

나와 아내가 보는 데서 말하여

아내는 노모와 아버지를 믿지 못한다고 했다.

아내가 노모의 악영향을 받게 되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용역 청경 근무 때

같은 용역 청경 근무자들이

나를 강제로 해고시키려고 안달을 부렸다.

용역 청경 조장과 용역 청경 반장이

처음에는 내 곤경을 이해했으나

결국 나를 내쫓아 내었다.


대전의 가장동 래미안 아파트에서

보안요원이란 이름으로 재기를 노렸다.

말 그대로 아파트 용역 경비원이다.

20대 미혼 경비원들이

입주민들로 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어

나를 소속 용역회사 임원들과 싸우게 했다.


대한통운 택배 신탄진 터미널에서

용역 경비원으로 일하던 중에

나보다 나이 많은 차량통제요원들이

경비 근무자들의 사소한 실수에 꼬투리를 잡았다.

이에 나를 희생양 삼았다.

결국 나는 그들로 인해 어이없이 쫓겨났다.


그 외에도 많이 겪었고 계속 겪는다.

이간질로 인하여
서러움이 있는 마음의 흉터이자

내 인생의 아프고 슬픈 기억들이다.

나는 잊을라 해도 잊을 수 없어

마음에 한이 맺힌 것이다.


이간질은 이렇게 매우 무서운 것이다.

내가 자신들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나를 이용하여
이간질을 시키는 것,

그렇게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 보다.

나의 마음에 병들어 가는 것도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