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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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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Sep 22. 2018

심한 가슴앓이

아내와 나의 슬픈 사랑

아픈 마음을 끌어안다


아내와 치킨을 먹으며

아내가 내게 울먹이면서 말한다.

자신은 한국적응을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한다.

아내이기 이전에 국내 체류 베트남인이기에,

나의 부족함과 못남이

아내를 많이 힘들게 한 게 사실이다.


나 역시 울먹이며 말했다.

남편이기 이전에 한국 남자이라서,

가정의 심한 불화와 갈등으로 인해

내가 원치 않게 매우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고.

아내는 진지하게 말한다.

내 부모와 친척들의 잘못을 잊어버리라 한다.

회사에서 장기근속을 위해 노력하란다.


올해 2018년 11월에

아내는 베트남에 돌아간다고 했다.

한국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단다.

왜 그런지 몰라서

처형에게 물어봐야 할 상황이다.

아내에게 뭔일이 생긴 듯하다.


며칠 전에 꿈에서

아내가 납치를 당해 죽었다고,

납치범 2명이
아내를 100원 동전보다 못하다고 여기어

아내의 목을 세게 졸라서 죽였다고,

아내의 죽음에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베트남에서 이 소식을 듣고
아내의 오빠인 처남이 급히 집에 왔다.

아버지란 사람은
내가 노모와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알고선
자신과 같이 둘이서 살자고 말했는데,

나는 울면서 재혼할 꺼라고 했다.


몇 년전에도
아내는 그 말을 했는데

실상은

처갓집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거러고

베트남에서 내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아내는 
아내이기 이전에

여자이자 베트남인이라서,

나는 그 말의 의도는 알 수 없다.

짐작으로는 어림이 가는 데도 어렵다.

베트남 문화가 한국문화와 다른 게 있다.

문화의 차이에다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는데다

성별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으니

아내는 내게 하는 충고가
사람들의 말에 늘 경청하라고 말한다.


나는 아내의 처진 어깨를 만져 주면서도

아내에게 미안하다란 말을 말했다.

내가 못난 죄인이다.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에게,

아내를 만나기 전에

내가 이런 모습을 사진에 찍어 준비했더라면,

관공서의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 청원경찰로
혹은

공립 중학교의 역사 교사로 재직하고 있고

교회에서는

구세군의 하급 사관(특무)로 일하고 있는 모습

이 모습들을 독사진으로 해서

베트남의 호치민 씨티에 있는 맞선장에서

아내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주며 주었더라면.


며칠 전에

나는 일반 경비원 신임교육을 받았다.

우체국이나 우정관서의 일근제 청사경비원으로

정년퇴직을 목표로 일하면서도

아내와 구세군의 하급 사관(특무)로 일하려고,

물론 이에 따라서
관공서의 무기계약직 일근제 청원경찰 역시도.


경북 김천에 있는 우정사업조달사무소,

거기서 맞교대 청사경비원으로 일했었다.

청원경찰 마인드를 심하게 가짐으로 교만하다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심하게 아파서

질병사유로
근무 3개월 만에 퇴사했었다.

내가 대학교 보안요원으로 재직 시에

꼭 근무하고 싶어했던 곳 이였는데,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청원경찰 시험에 낙방되어

예수님께서 나를 급히 보내셨던 곳 이였다.


조만간에

아내는 나의 좋은 소식을 들을 것이다.

내가 우정관서의 청사경비원으로 임용되거나,

관공서의 무기계약직 청원경찰로 말이다.

나는 이에 대해
늘 예수님께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택배회사의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간절하고 갈급한 나와 아내의 마음,

슬픈 사랑의 이 사연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나

예수님만이 완전히 이해하시고 알아주신다.

오늘도 아내의 아픈 손을 잡고서

예수님께 함께 나아간다.


      베트남에서 아내와 함께했던 행복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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