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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언 Jan 13. 2022

호치민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어쩌다 호치민 마담 #1

베트남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몰려다니는 오토바이 떼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나 역시도 호치민에 도착하고 처음 외출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오토바이 떼에 당황했다. 때론 보행로를 침범하기도 하고, 역주행도 하고, 보행로와 차도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오토바이는 거리를 누비는 무법자였다. 거리의 주인은 자동차도, 사람도 아닌 오토바이였다. 나는 과연 이 무법자들을 피해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될 정도였다.

© Olgaozik, 출처 Pixabay




몇 달간 지내다 보니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일상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이 이동할 때도, 등하교 픽업할 때도, 여행 갈 때도, 짐 옮길 때도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낮잠도 오토바이 위에서 잔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능 템이었다. 특히 베트남에서 대낮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무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오토바이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탓도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1킬로미터 정도는 산책 삼아 걷곤 했던 나조차도 이곳에서는 10분만 걸어도 무더위와 땡볕에 체력이 고갈돼버렸다. 호찌민 사람들은 삼보 이상 걷지 않는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결국 태양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근거리를 이동할 때도 그랩이나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고, 슬슬 오토바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뭐든지 옮긴다는 오토바이 © Tho-Ge, 출처 Pixabay
오토바이 위에서 낮잠 자기 © pjwphoto, 출처 Unsplash


오토바이를 한번 타볼까? 당연한 얘기지만 오토바이를 타려면 운전면허증이 필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국 전 한국에서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 갔지만, 안타깝게도 베트남은 국제면허증이 통하지 않는 나라였다. 즉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운전하려면 베트남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간혹 운전면허증이 무모하게 오토바이를 타는 외국인도 있다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는 안전이 제일인지라 나는 베트남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로 했다. 베트남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베트남어로 된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직접 치르고 운전 면허증을 받는 방법과 한국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베트남 운전면허증으로 발급받는 방법이다. 전자는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고, 후자의 경우 비자 유효 기간까지만 면허증이 발급된다. 한국 운전면허증으로 베트남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방법은 번거롭긴 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권과 한국 운전면허증을 1군 인민위원회 건물에서 베트남어로 번역 공증한 후, 3군에 있는 호치민 교통국 운전면허증 발급소로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발급비용 135천 원(7천 원 상당)을 내면 되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직원이 이름을 호명하면 면허증 사진을 찍게 되는데, 베트남 발음으로 불린 내 이름은 참 낯설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고정된 카메라 앞에 내가 의자를 앞뒤로 옮겨가며 사진 크기를 조정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를 제출하고, 1주일 후 베트남 운전면허증을 받게 되었다.


호치민시 교통국 운전면허증 발급소


베트남 운전 면허증

베트남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오토바이 렌털 샵에서 도로 연수를 받기로 했다. 내가 사는 2군은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영어 하는 베트남인들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편의 시설이 많은 편이다. 3회에 3시간 연수에 60만 동을 내고, 강사 뒤에 타고 차가 없는 외진 도로로 향했다. 간단하게 달리는 법과 정지하는 법, 다리 쓰는 법을 간단하게 배우고 바로 오토바이 연수를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번 그랩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달리는 것도 짜릿한데, 직접 오토바이를 운전할 생각을 하니 긴장되었다. 다행히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운전했던 경험 덕분에 오토바이 연수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세 번째 연수가 끝나고 바로 오토바이를 렌트했다. 보증금 300만 동에 1달에 150만 동을 내면 되는데, 여러 종류의 오토바이를 바꿔서 타볼 수 있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덜컥 사놓고서 타지 않으면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십상이니, 우선 내가 오토바이를 잘 활용할지 적응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작은 오토바이에서 사이즈를 올려가며 나한테 맞는 오토바이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파트 주차장에 렌트한 오토바이를 등록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만의 연습을 한지 일주일 만에 아이들을 태워봤다. 차가 많이 없는 주말 오전에 시험 삼아 아이들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왕복하니, 아이들이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초보운전이니까 비명 금지, 흔들기 금지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하교시간에 오토바이를 운전해 아이들 픽업을 시작했다. 교통체증에 영향을 받지도 않아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다. 우리 아이들도 차량으로 픽업하는 것보다 오토바이로 픽업하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아이들은 뿌듯해했고, 한국 학부모들은 깜짝 놀랐고, 베트남 학부모들은 나를 더 가깝게 느끼는 듯했다. 오토바이 타보니까 어떠냐며 물어보는 베트남 친구들. 자랑스러운 오토바이 문화를 한국 친구도 누릴 수 있게 됨을 축하해주었다.


오토바이를 4달 정도 렌트해서 타다 보니 오토바이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한 것은 무법천지 같은 오토바이들 사이에도 자율적으로 지켜지는 간격과 속도가 있어, 무리하지만 않고 흐름을 잘 타면 오토바이는 생각보다 안전하게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무법천지 같은 오토바이들 사이에도 자율적으로 지켜지는 간격과 속도가 있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잘 타고 다니는 걸 보고, 남편이 생일 선물 겸 결혼기념일 선물로 오토바이를 사줬다. 저렴한 중고 오토바이를 살 수도 있었지만, 고장이 날 경우 수리가 힘들다는 점 때문에 베트남 친구들이 극구 만류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내 오토바이

나의 첫 오토바이를 타고 집이 있는 2군과 사무실과 학교가 있는 7군을 포함해 호치민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길을 잘못 들면 오토바이를 세우고 휴대폰으로 구글 맵을 열어서 길을 찾아냈고, 오토바이 전용차선을 따라 어느새 목적지에 닿아 있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엔 무조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고, 커피를 마시러 나갈 때도 아이들 학교 픽업도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교통체증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아등바등하던 일은 더 이상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고, 그렇게 오토바이가 있는 삶에 익숙해져 갔다. 어느 날인가는 길을 잘못 들어 사이공 강변도로를 따라 달리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햇볕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강을 따라 내내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오토바이는 내게 자유로움이 되었다.


하지만 정해진 일상으로 복귀가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covid-9) 때문에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갑자기 귀국이 결정되었고, 내 첫 오토바이는 귀여운 아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에게 팔렸다. 한국에 가지고 갈까도 생각했는데, 해외 운송회사에 물어보니 중고 오토바이는 세관 통과가 복잡하고, 관세가 붙으면 새로 사는 것과 차이가 별로 없다고 했다. 오토바이가 없어지자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오토바이를 팔 정도로 우리 집이 가난해 진건가 슬퍼했지만, 이내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오토바이와 작별했다. 안녕, 나의 첫 오토바이.

내 첫 오토바이와의 추억 담은 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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