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사랑하는 나에게 베트남은 천국이었다. 베트남 커피 하면 떠오르는 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찌 어이를 불러 주문하는 길거리표 카페 쓰어다(Ca Phe Sua da, 아이스 연유 커피)다. 서울 홍대 부근에 분점까지 낸 콩 카페의 코코넛 커피가 제법 이름을 알렸다지만, 여전히 내게 베트남 커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진하고 달콤쌉싸름한 싸구려 커피, 카페 쓰어다인 것이다.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르다는 미리 끓여놓은 쓰디쓴 커피에 달달한 연유를 잔뜩 붓고, 어떤 물로 만들었는지 알 수도 없는 얼음을 잔뜩 넣어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는 이 커피는 배앓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아침나절의 흐릿한 정신을 깨우기엔 이만한 것도 없다. 해 뜰 무렵부터 오토바이에 각종 음료와 먹거리를 싣고 다니는 찌 어이가 파는 카페 쓰어다는 하루 중 가장 일찍 마실 수 있는 남이 타주는 커피였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지만, 커피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
핀으로 내려마시는 카페다, 설탕을 함께 준다
길거리 커피에는 카페 쓰어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달한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시는 카페다(Ca Phe da)가 있는데 그냥 아이스커피다(카페 = coffee, 다= ice). 어느 날 집 근처 모퉁이 카페에서 여느 때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려 줄 서서 기다리다가 베트남 사람이 주문하는 카페다라는 커피를 알게 되었다. 메뉴판에는 없는 음료인데 베트남 사람들은 그냥 주문하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겉보기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가격이 2만 동이고 카페다는 1만 2 천동이었다. 외국인이라 비싸게 파는 건가? 똑같은 커피를 카페 덴다라 부르는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면 외국인 차별 아닌가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결국 호기심에 카페다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둘은 완전히 다른 커피였다. 카페 덴다는 끓이다시피 만드는 커피라 혀를 내두를 정도로 써서 커피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커피에 설탕이나 연유를 엄청 넣어서 먹는 거였구나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눈치 주는 사람도, 눈치 보는 사람도 없었던 카페 문화
골목 작은 카페도 많지만, 스타벅스, 커피빈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하일랜드 커피, 쯩위웬(Trung Nguyen), 커피하우스, 콩 카페와 같은 베트남 자체 브랜드 프랜차이즈 카페도 많다. 스타벅스의 경우 베트남 커피 시장에 진입하면서, 베트남산 커피 원두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기로 약속했다고 하던데, 그 덕분인지 스타벅스는 베트남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베트남 커피 브랜드 하면 쯩위웬 커피를 떠올랐다. 선물용으로 좋을 법한 나폴레옹 그림이 새겨진 고급 박스에 담긴 원두와 한국 대형마트에서도 볼 수 있는 G7 믹스커피는 6년의 베트남 생활 중 가장 가까이했던 커피 브랜드였다.
베트남의 카페 문화는 한국과는 좀 달라 보였다. 이렇게 해도 장사가 되나 싶을 정도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종일 앉아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다. 눈치 주는 사람도 눈치 보는 사람도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 오히려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테이블 옆에 벽전원을 설치해둬서 손님이 불편 없이 오래 머물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덕분에 골목 안에 예쁜 카페를 찾아 편한 구석 자리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곤 했었다.
커피의 나라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다
커피의 나라 베트남에서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듣기로 했다.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서 좀 더 배우고, 직접 만들어 마시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인데다 카페도 많아서인지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푸미흥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한국인 강사가 하는 바리스타 교육과정이 있다고 해서 등록했다. 카페에서 커피도 직접 뽑아 마시며 수업을 들을 거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등록했는데, 이론수업은 학원 강의실에서 실기수업은 3군에 있는 실습장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지루한 이론 수업 간간히 곁들여지는 베트남 커피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아침 수업을 듣기 위해 주 2회, 3군 실습장까지 가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었는데, 이론 시험은 한국에서 온 시험지로 시험 쳐서 한국으로 보내서 채점하고, 실기 시험은 외부 전문 시험관이 직접 와서 채점을 했다. 해외라고 해서 설렁설렁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시험관에게 물을 서빙한 후 인사말을 건네고, 커피를 직접 뽑아 다시 서빙하는데 팽팽한 긴장감에 손이 덜덜 떨렸다. 홈페이지에서 합격여부를 확인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받으니 별거 아닌 듯 하지만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한동안은 커피 전문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핸드드립으로 커피도 내려 마시고,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도 추출해보는 등 커피에 집중했지만 언젠가부터 시들해졌다. 역시 커피는 남이 타주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