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언 May 13. 2022

현지인과 함께 한 첫 여행

#4 달랏(Da Lat)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지인과 함께 한 첫 여행지는 달랏(Da Lat)이었다. 남편과 함께 근무하는 사무소 현지인 직원들과 함께 갔던 2박 3일의 짧은 워크숍이었다. 우리 가족이 호치민에 도착한 지 세 달쯤 되었을 무렵이라 현지 생활이 낯설었다. 우리보다 두 달 먼저 도착해 현지 적응 중이던 남편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많은 곳을 데려가려고 애썼다. 어느 날 갑자기 호치민에 떨어져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우리에게 베트남도 사람 사는 곳이고, 좋은 곳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여행 준비 역시 먼저 들어온 남편이 했다. 신생아의 성장 속도가 하루하루 다르듯이, 2달 먼저 적응한 남편은 내 기준으로 현지인 수준이었다.  






달랏은 호치민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이면 가는 곳이었지만,  차로 가면 7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달랏에 갈 때 슬리핑 버스를 타고 간다. 심야버스를 타고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달랏 도착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막상 차로 타고 달랏을 가보니 그 길이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비탈길 곳곳에는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고가 많이 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작은 재단이 있었다. 그럴 때면 안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향을 피우고 돌아왔다.


2박 3일의 일정이었지만, 호치민에서 달랏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긴 탓에 달랏을 제대로 불 수 있었던 건 단 하루였다. 우리 가족이 달랏에 처음 간다는 걸 알았던 현지인 직원은  짧은 일정에도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추측컨데 당시 스케줄은 아래와 같았다.  


1일 차 호치민 출발/ 달랏 숙소 도착, BBQ
2일 차 크레이지 하우스, 랑비엥-죽림선원, 쁘렌 폭포, 로컬 시장
3일 차 딸기밭 기념품점, 땀 차우(휴게소), 호치민 도착
*2015년에 다녀온 기억으로 적는 여행기라 기억 왜곡이 있을 수 있다.

 


천국보다 낯설었던, 현지 홈스테이

우리가 머물렀던 곳의 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파라다이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다. 달랏 시내에서 꽤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 숙소 입구가 보이길래 높이만큼은 천국에 가깝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이곳은 사무실 막내 P가 페이스북 검색으로 찾아내 예약한 곳으로, 금액도 합리적이고 딸기밭도 있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외가에서 딸기 체험을 했던 적이 있었던 우리집 아이들은 딸기밭 소식에 들썩였다. 달랏은 딸기 체험으로도 유명하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에서 먹는 향긋하고 달콤한 딸기를 먹기 힘든데, 그나마 달랏에서 나는 딸기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시다. 그래도 우리 아들들은 잘도 먹는다.

숙소에 도착해서 보니, 딸기밭이라기 보단 정원에 딸기가 몇 포기 심어져 있었고 딸기도 두어 개 달려 있었다. 브온(Vuon: 농장, 정원, 밭에 두루 쓰임)이란 베트남어 때문에 생긴 오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들들은 소중한 딸기 두 알을 따서 나눠 먹었다. 정원인지 텃밭인지 산책을 하다 어느새 숙소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시골 황무지 길과 마주하게 되었다. 해질 무렵 그 길을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차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었다. 어지러운 세계와는 동떨어져 우리만의 '낙원'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파라다이스'였던 건가. 달랏 시내지만 전혀 다른 곳에 와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비록 숙소에선 쿰쿰한 오래된 침구 냄새가 나고, 모기에 밤새 뜯겼지만, 정원이 있었고, 딸기도 있었고, 모닥불을 피울 수 있어 제법 운치도 있었다.


직접 준비한 BBQ, 머리와 발이 붙어있는 통닭구이


우리 가족들을 환영하기 위한 것인지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직원들이 직접 요리를 하겠다고 했다. 작은 주방과 밖에 불을 피우고 동시에 요리를 했다. 첫날 메뉴는 바비큐였다. 저녁 메뉴가 바비큐라는 소식에 나도 쌈야채와 직접 만든 쌈장을 준비했다. 한국식 바비큐를 좋아하는 요즘 베트남 친구들은 쌈장도 곧잘 먹는다고 들었다. 함께 곁들인 베트남 스타일의 양배추 샐러드는 바비큐와 궁합이 좋았다. 고깔 양배추 샐러드를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느억맘(액젓)과 라임즙을 듬뿍 짜서 넣었다. 거기에 바삭바삭하게 튀긴 샬롯을 올렸더니 아삭아삭한 식감에 산뜻한 맛의 샐러드가 뚝딱 완성되었다. 액젓에 라임만 있어도 감칠맛이 도는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 먹었던 샐러드는 두고두고 기억이 남아 호치민에 돌아와서도 몇 번 시도해 봤는데 그 맛이 안 난다.

두 번째 저녁, 우리는 로컬 시장에서 머리와 발이 달린 생닭을 만났다. 베트남에서는 머리와 발이 달린 채로 판다더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 적어도 프라이드치킨을 주문했는데 목이 두 개이거나 다리가 세 개인 일은 없을 것 같다. 닭 두 마리를 사서 한 마리는 삶고, 한 마리는 통째로 구웠다. 풀어놓고 키우는 닭이라 그런가 살은 별로 없었지만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맛이었다.



달랏 겉핥기

침을 먹고, 숙소에서 가까운 크레이지 하우스(항 응아 빌라)로 향했다. 2022년 현재까지도 공사 중이라는 이곳은 실제 사람이 머물 수도 있는 호텔이기도 했다. 크레이지 하우스는 계단, 창문, 외벽, 지붕 등 뭐든지 특이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건물 전체가 신기해서인지 아이들은 오르락내리락 신이 났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없는 특이한 계단들은 위험해 보였을 뿐 아니라, 건물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아이들이 숨어버리면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는데, 틈틈이 보이는 달랏의 풍경은 그 와중에도 아름다웠다. 어느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도 독특한 배경이 포토존이 되어 주었다.(입장료 : 6만 동, 오전 8시 30분~ 저녁 7시)


출처: 베한타임즈(Vietnam-Korea Times)




비앵으로 가서 케이블카를 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으로 가면 정신을 어질어질한데도, 아들놈들 때문에 매번 놀이기구나 케이블카를 타야 했다. 다행히 지면에서 훌쩍 높이 떠서 가는 느낌이 아니어서 발아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발아래로 빼곡하게 소나무 숲이 보였다. 소나무 숲을 직접 걷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나무들이 뿜어내는 좋은 기운에 기분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니 감나무들이 보였다. 베트남에서도 감을 먹을 수 있는데 곶감(말린 감)은 다 여기서 생산되는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죽림선원(Thien Vien Truc Lam, 티엔비엔쭉럼)으로 갔다. 이름처럼 대나무 숲이 곳곳에 있었고, 나무들이 많아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여직원들은 여기서부터 걷기를 포기하고, 입구에 주저앉았다. 가까운 거리도 오토바이를 타서 그런 건지, 걷는 건 정말 못한다. 어려서부터 걷는 것에 단련된 우리 아들들은 지치지도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여직원 T의 말에 따르면 선원 아래로 호수가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진 가보지 못했다.



달랏은 꽃과 채소도 많이 나지만, 나무도 많고 폭포도 많다. 그래서 집라인이나 숲 체험 프로그램도 많이 있다. 우리가 갔던 곳은 쁘렌 폭포였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이 많은 곳이었다. 땡볕에 덥다고 짜증 내던 아이들도 아이스크림 하나에 짜증이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큰 애들은 코끼리 등을 타고 한 바퀴 도는 사이에, 작은 아이는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먹였다.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눈 질끈 사진이 나왔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족제비 커피가 보였다. 우리에 갇힌 족제비들이 커피 생두를 먹고 있었다. 사향고양이 똥커피(코피루왁)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데,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서 앞으로 족제비 커피(위즐 커피)는 못 마실 것 같다.


겁이 많은 아이는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먹이로 주고 싶지만, 무서웠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달랏 여행은 그동안 우리 가족이 해왔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여행이었다. 우리 가족끼리 왔었으면 어땠을까? 숙소는 3성급 이상의 호텔이나 요즘 유행하는 글램핑을 예약했을 것 같다. 맛집을 미리 검색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 위주로 코스를 짰을 거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과 함께 갔던 여행이라 여러모로 생각했던 것과 확연하게 달랐다. 숙소는 현지인이 머무를 법한 홈스테이였고, 직원들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었다. 달랏은 처음이라고 하니 어디를 갈지 직원들이 알아서 결정했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주는 대로 먹고, 가자는 대로 다니는 여행도 나쁘진 않은 듯하다.

그 덕분에 달랏(Da Lat)이라는 보석 같은 곳도 알게 되었고, 남편이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 지도 알 수 있었다. 많은 곳을 다니지도 못했고, 신선한 공기를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달랏의 공기는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언젠가 달랏을 다시 가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결국 가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베트남이 다시 열리면, 다시 달랏에 가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