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걸까
나는 글을 종종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해서 쓴 적은 거의 없다. 속으로만 쌓아두다가 신체 어디로 나가는지 제법 구체적인 기억들이 자동삭제되는 중이다. 못 잊을 것만 같은 순간의 기억도 깜깜한 곳으로 사라진다. 오늘은 아이에 대해서 글로 남겨본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여전히 이유 없이 뛰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싫어한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엄마인 나를 자기보다 아주 큰 거인으로 위치시켜 놀리면서 내게 자신의 심신을 기대어 맘껏 좋아한다. 그 시간에는 마음에 기대고 몸을 비비고 눈으로 소리로 낄낄대며 세상 즐겁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신비아파트도 막을 내리며 수십 개의 소장 피규어들에서는 탈출했지만 마블 캐릭터들을 연이어 좋아하고 있고 마인크래프트 레고 시리즈를 여러 개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보지 않은 닌자고 레고도 관심을 보이며 만들고 샤부작 모으고 있다. 대결을 하는 구도를 좋아하는 아이는 착한 자들과 협력하는 자들, 빌런으로 구분한다. 캐릭터에 따라 빌런은 본래 악인은 아니다. 신비아파트의 영향인지 각자 우리가 모를 사연을 안타깝게 가지게 되어 악인이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뒷얘기를 알고 나면 이해가능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진 캐릭터라고 말이다. 그래서 아이는 일찍 무서운 만화를 봤지만 이해하는 듯했고 악몽을 꾸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놀라게 하는 이미지 효과인지 다섯 살에서 여섯 살 즈음 갑자기 밤중에 우는 야경증이 좀 있었고, 잠결에 깨서 중얼중얼 전달되지 않는 말들을 내며 잠 속에서 깨어나지 못했었다. 학교에 들어가면 사라질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신기하게 사라졌고, 야경증은 손에 꼽게 가끔 일어났던 것 같다. 벌써 내가 잊어버린 것인지, 당시 밤중 자다가 깨는 것에 익숙해진 삶을 5, 6년 겪어서인지 아이의 이러한 불현듯 깨어나는 상황으로 심하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사고와 시체, 변형된 신체들이 실사판으로 나온 다는 얘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상상이 늘어난 것일까 더 현실화된 상황은 상상이 줄어든 것일까 아이는 무섭다는 표현을 썼다. 상상이 늘어나서 두려워진 것일까 상상이 현실화되어 두려워진 것일까 잘 모르겠다. 어릴 적 어두운 방을 나는 싫어했다. 어떤 사람도 없는 방이, 어떤 사람도 없는 길이, 어떤 사람도 없는 건물이 무서웠었다. 커서는 사람이 있을 때가 무서웠던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무엇으로부터가 아니라 상상이 증가했을 때 두려울까 상상이 감소했을 때 두려울까 생각해본다. 내가 요즘 언제 두려웠는지 돌이켜보면 일어나지 않는 일을 점치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어쩌면 어릴 적 꿈에서 어두운 방에서 밝은 낮에서 내 가까운 미래로 시간이 공간을 확장시키며 더 이상 꿈에서는 악몽을 꾸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며 저 공간들이 시간으로 이행하고 상상을 증가시켜 두려움을 가까운 미래에 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이의 두려움이 나와 같이 흘러오지 않도록 할 방법은 그럼 무엇일까 또 생각해 본다. 꿈의 공간에서 상상을 타고 창창할 시간에 미리 도달해 있는, 혹은 아직 도달하지 않은 두려움에 너는, 또 나는 어떻게 단단해질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