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상영 속도가 늦어진 필름 속에 들어간 느낌

언택트 시대 예술 디알로그 No.2

by 엘로디 옹그

인생의 반이상인 30년 넘게 파리에서 생활을 하며 때로는 현지 특파원으로서 방송을 하고, 때로는 미술책 출판일과 전시 기획일을, 국내에서는 부산비엔날레 1회 예술감독, 예술의 전당 전시예술감독 등을 엮임한 김애령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근 15년 전 유학시절 만나 지금까지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신 선생님의 살아온 이야기와 예술에 대한 넓고 깊은 안목, 작품을 수집하는 즐거움, 작가를 대하는 자세 등에 관해 서신을 주고 받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출간을 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나누고 있는 아름다운 내용들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질문 1 >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이후 어떻게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답변 1 >

정기적으로 전시를 만드는 현장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근현대미술 전반에 걸친 정보수집, 작가 연구를 하고 작가, 작품, 컬렉터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특히 전시 방식을 재고하게 하였는데 아직 묘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빈번하게 전시가 일어나는 화랑들의 경우 소규모 커뮤니티 형식의 사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눈에 띕니다.


질문 2 > 현재 하고 계신 일로 제일 힘들거나 곤란한 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2 >

협력 대상이 주로 유럽의 파트너들인데 일단 업무는 정지된 상태에서 안부만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팬데믹 상황이 국내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어서 정상화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복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더욱 큽니다.


질문 3 > 언택트 시대가 되어 예술 측면에서 나아진 점이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답변 3 >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한 미술과 전시는 신체 감각과 공간 경험을 전제한 것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로 존재하는 디지털 영상작업의 경우 언택트 시대에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보가 아닌 작품인 이상 신체와 공간을 생략할 수는 없습니다. 주변 작가들을 보면 락다운을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창작이 아니라 전시, 학습, 거래 등 미술 소비에 있어서 창의적인 발상들이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학습 면에서는 미디어의 활용 가능성은 크게 열려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기존의 프레임에 자료를 얹는 정도가 아닌 대면의 감동에 근접하는 창의적인 미디어를 기대해 봅니다.


질문 4 >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는 예술 측면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답변 4 >

예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감각, 인식, 표현, 태도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작가의 진정성은 다양한 형태로 보이기도 하고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하지만 미술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미술이 시각의 영역이다 보니 현혹과 착시가 다반사입니다.


질문 5 >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답변 5 >

누구도 적극성을 취할 수 없이 천천히 지연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갑자기 상영 속도가 늦어진 필름 속에 들어간 느낌을 줍니다.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구상하던 출판 프로젝트들을 매듭지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질문 6 >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영향을 받은 예술가나 인물이 있나요?


답변 6 >

학창시절에는 매일매일 영향을 주는 인물들이 추가되었는데 이제는 모두 다 반죽되어서 내 피가 되고 살이 된 것 같습니다. 창작의 여정이 길던 짧든 간에 치열하게 추구하여 영원한 미스터리 같은 작품을 만든 동서고금의 거장들, 시각과 인식의 신비에 대해 명상한 작가들... 특히 눈먼 작가 보르헤스가 눈뜨게 해 준 것이 많습니다. 큐레이팅의 분야에 있어서도 <바벨의 도서관>은 전범이 되었습니다.


질문 7 >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7 >

예술가의 사명은 오로지 그 자신과 자신이 스스로 정한 예술적 맥락에 대해서 유효할 뿐입니다.


작가들에게 사회적 역사적 사명을 요구하는 일은 창조력을 고갈시키고 위선을 조장하며 인식을 확장시키는 작품이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전체주의 하의 예술이 보여주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삶과 경험에 일관된 형태를 부여하는 사람들로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에게 진실하고자 하는 의지를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렇다면 나의 해석과 번역은 더이상 쓸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