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나의 해석과 번역은 더이상 쓸모없다.

언택트 시대 예술 디알로그 No.1

by 엘로디 옹그

인터뷰이 음성 듣기에 집중하여 정리 편집한 내용입니다. 그 첫번째로서 미디어아티스트 양아치 작가와의 인터뷰를 게재합니다.

양아치 작가 홈페이지 : yangachi.org




질문 1 >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 어떻게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답변 1 >

아직은 포스터 코로나가 아니기 때문에 예측만 하자면 AI, 모빌리티, 에너지, 스마트시티에 대한 변화가 생기겠죠. 제로원 현대자동차 프로젝트 참여했고 올해도 참여 중인데 저 역시 기업이 정부와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의식주를 설계하는지 피상적인 위치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제로원(zer01ne)은 현대자동차 그룹의 후원 속에 국내 창의 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2018년 3월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에 문을 연 새로운 개념의 혁신 플랫폼으로서 크리에이터, 아티스트, 스타트 업이 서로 교류하는 공간이다.


미디어가 알려준다던지 얘기를 통해 듣는다던지 아니면 강의나 뭐 이런 정도. 근데 이제 직접 기업 안에서 내용을 듣다보니 정말 그 첨예한 문제들이 있었고 예술의 위치가 분명히 보이는 게 있었어요. 예를 들어 ‘테크’의 얘기를 먼저 하자면, 현대자동차가 기본적으로 분명히 테크를 자산으로 지금의 우리 삶을 가능하게 했죠. 그런 과정 아래 예술의 위치라는 것은 사실 어떤 부가가치를 만든다던지 삶을 직접적이거나 기본적으로 만들어지게 한다는 역할은 시기상조였고, 일종의 장식에 가까운 정도면 모를까. 아니면 의미를 완결시키는 역할로만 존재했죠.


제가 직접 그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서 예술가들을 초대한 자리에 참여를 해보니까 예술이 장식성 혹은 마케팅 차원으로서 무대 위에 오를 것인가에 대한 반문과 더불어 (예술 그리고 기업이) ‘우리의 본질적인 의식주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되지 않겠냐’라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죠.


질문 2 > 현재 하고 계신 일로 제일 힘들거나 곤란한 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2 >

현재 커머셜 갤러리에서 10월에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물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내 신체가 잘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갤러리 담당자들과 그런 얘기를 했어요.


과거에는 명성을 만든 다는 게 큰 비엔날레, 국제 규모가 있는 전시에 참여해서 이름을 얻고 로컬에 와서 부가가치를 누린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명성을 만들어낼 것인지 질문을 했죠. 명성을 만든다는 방식이 이제는 발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정말 힘든 정도가 아니라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술가들이 이제 어떻게 명성을 만들 수 있을지 말이죠.

질문 3 > 언택트 시대가 되어 예술 측면에서 나아진 점이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답변 3 >

요즘 이 사람을 자주 비유하는데 ‘이세돌’이 있었잖아요. 바둑의 이세돌 경험이 지금 우리와 굉장히 비슷한데 이세돌은 자기의 해석과 번역에 수가 있잖아요. 그 수를 통해서 상대를 수싸움에서 자기가 승리를 걷어가는 거잖아요. 이제 ‘알파고’가 나왔다는 것은 그 수의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는 거죠. 해석과 번역이 그동안에 연결이 안 되어 있었는데 연결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의 해석과 번역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래서 이세돌은 이제 그 일을 안 하게 되잖아요. ‘내가 여기서 예술의 새로운 감성이라고 보는 것이 뭐냐면, 해석과 번역을 떠나는 어떤 선택지가 지금 필요하구나.’

그래서 고민이 되는 게 나의 해석과 번역의 결과물이 과연 이게 맞겠냐 게임의 상대자가 설령 있건 없건 누구하고 비교해서 양 작가가 잘했어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자기의 해석과 번역을 저는 좋게 바라보고 있는데, 이세돌이 선택한 것이 무엇이냐면, 드디어 ‘해석과 번역으로부터의 탈출, 노동으로부터의 탈출. 인간의 원래 해야 할 일’로 이세돌이 돌아갔다고 보고 있어요. 그 부분을 조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지금 구술로 얘기하기에는 거기서 가능성을 본 거죠.


언택트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두고 예를 들고 싶은 장면 중에 하나가 ‘이세돌이 바둑을 두지 않고 관여한다는 거죠.’ 이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행위를 빼버리고 바둑을 영원히 떠나지 않죠. 그렇다면 예술로 바꿔서 얘기한다면 예술을 하지 않는데 관여한다는 것으로 생각해보면 재미난 것이 나올 수 있겠죠.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전시를 하지 않는데 예술을 존재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세돌을 적용해보면 이런 말도 되거든요. 언택트 시대니까. 예술은 언제나 존재 해왔으니깐요.

질문 4 >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는 예술 측면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답변 4 >

평소 홍콩, 대만에 관심이 많은데 다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대해 생각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에 대한 다방면의 평가도 과거와 현저히 달라졌고, 정보화된 지금의 이 종합적인 상황을 두고 4차 산업 혁명, 새롭게 혁명된 이 시대에 너무 큰 파도가 몰려온 것은 같지만 너무 신날 것 같은 거죠.


예술의 위치가 그동안은 시기상조의 역할이었다면 서서히 직접 참여를 원하는 무언인가가 있다면 테크의 역할도 인정을 하면서 반면에 예술의 위치도 본질적으로 얘기를 좀 더 해야 하는 거죠. 요새 들어, 윤리, 미학이 공존할 수 있는 것들로, 더 간단히 얘기하면 ‘진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다원화된 세계를 우리는 누려왔잖아요.


근데 사실 실질적으로 우리의 세계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포스트모더니즘 비즈니스를 해온 것이죠. 실제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것에 교차하는 그런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적이든 상품으로든 우리는 너무 많이 그러한 비즈니스를 해왔죠. 그것을 인정하고 살아왔다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를 앞두고 예술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가 만들어낸 것들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판단해요.


동시에 성찰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의 예술은 결론적으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에 그렇게 많은 번역과 해석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를 어찌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우리가 지금 욕심낼 그러한 문제가 아니라 성찰을 통해서 다시금 예술을 바라보고 기술도 바라보고 우리가 새로운 의식주와 부가가치를 어떻게 상상해야 할지 그 기회를 가지는 것이죠. 예술의 위치가 특별하고 새롭다기보다는 본질적인 역할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 부분에 대하여 전력을 다하는 것이 맞죠.


질문 5 >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답변 5 >

아시다시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미디어 이전의 미디어>가 있죠.


인터뷰어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사업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담당이었던 문화창조원 복합5관의 미완 프로젝트. 지금은 ‘미디어 이전의 미디어’라는 용어가 강조되지 않아도 미디어에 대한 바른 이해가 확장 되어있는 상태이지만 당시로서는 예술 분야에서 ‘미디어’라고 하면 전기 없이는 회자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현재, 양아치 작가는 ‘방해석’이라는 고대 바다에서 사용하였던 미디어 매개물을 가지고 ‘본다는 것’에 대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질문 6 >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영향을 받은 예술가나 인물이 있나요?


답변 6 >

스피노자, 들뢰즈, 그레이엄 하먼이 되겠죠.


우리의 인식은 인식체계의 총량이죠.


이 말을 달리하면, 홍희진이란 사람의 인식에 있어 모든 총량은 연결된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이것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과 책이 주는 정보를 통한 인식의 총량이었지만 요즘은 데이터로 모두 연결되기 때문에 상당히 달라졌다는 얘기죠.


최종 결론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주객 차이 문제를 다루는 데도 지금의 인식은 이원화된 세계가 아니라 ‘일원화된 세계’, 신의 세계가 아니라 ‘데이터 클라우드 세계’, 강력한 감시체계가 있는 세상이 우리를 모두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았어요.

질문 7 >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7 >

앞서 언급을 했지만 윤리와 미학의 공존 차원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그것이 곧 예술가의 사명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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