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예술 디알로그 No.4
서울로 다시 복귀를 하고 찾은 첫 번째 전시장은 을지로에 있는 상업화랑이었다. 당시 일하던 매머드급 기관에 신물이 난 상태로 미술 작품을 봐도 머리 혹은 가슴에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주지 않을 때이다. 딱딱하게 굳어진 감성은 미술 전시를 보러 가던 습관마저 병들게 했다. 미술 관련 일을 전혀 안 하려고 노력하게 하는 역힘을 주었고 실제로 일 년 남짓 기술을 배우며 다른 길로 들어서려는 준비를 도모하기도 했다. 그런 시기에 상업화랑을 들락거리며 보게 된 미술전시가 송수영 작가의 개인전이다.
어떤 설명 없이 눈에 들어온 광경. 그 한 장면으로 위로를 받았다. ‘다시 동하게 하는 힘. 이 작가와 소통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전시 리뷰를 쓰고 싶다.’ 그런 인연으로 송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챙겨보게 되었고 글로서 다시 작품을 사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내 인생의 중요한 모멘트에 만난 작가가 되었다.
송수영 작가와의 본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기만 하고 받아 적지는 못했다. 아래 내용은 그녀 혼자만의 시간에 작성된 서면 인터뷰이다. 편지를 띄웠고 답장이 도착했다.
질문 1 >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이후 어떻게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답변 1 >
크게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미술 작업으로, 일상의 사물이나 풍경을 변형시켜서 다른 이미지를 중첩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재료는 일상적이지만, 작업 과정이나 결과물은 조각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는 미술 교육으로, 대학에서 ‘현대미술의 감상과 이해’라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제 작품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는 코로나의 영향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초에 계획된 오프라인 단체전이 11월에 하나 잡혀 있지만, 코로나 전이나 후나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전에도 SNS를 통해 작품 이미지를 올리고 있었고, 저 같은 경우는 1년에 한 번 정도 전시를 해왔기 때문에 특별히 전시가 줄어드는 등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육에서의 변화는 크게 느껴지는데, 모두 비대면 강의로 바뀌면서 직접 체험보다는 시청각 자료에 의존하고, 학생 간 교류가 적어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여러 학생들이 함께 전시를 보고, 작품에 대해 토론 한 후 감상문을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각자 온라인으로 작품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 방식으로 바뀌는 식입니다. 그러면서 조각 작품처럼 물질적이고 체험적인 작품보다는 개념적이고, 온라인으로도 감상이 가능한 작품을 주로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질문 2 > 현재 하고 계신 일로 제일 힘들거나 곤란한 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2 >
코로나 전 작가로서 제일 힘든 점을 말하자면, 이 일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입니다. 감상적이거나 배부른 소리로 들릴까봐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 힘들거나 곤란한 일도 그것이 ‘의미’있다고 느껴지면 이겨낼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면 힘이 빠져서 별 것 아닌 일도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미술계 안에 속해있으려는 과정에서 힘이 빠지곤 했습니다. 텅 빈 전시장을 지키고 있을 때. 전시장을 휙 돌고 ‘이 전시장에서 전시하려면 어떤 경로를 통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관객을 만날 때, 제 전시를 봤다는 기획자가 제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 미술관계자 간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힘이 빠졌습니다.
읽는 사람 없는 편지를 쓰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읽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공을 들여서 잘 써도 그 편지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코로나 이후 작가로서 힘든 점을 말하자면, 안 그래도 전시를 열면(블록버스터형 전시가 아닌 이상) 소수의 사람만 보러 왔는데 요즘은 그 수가 더 줄어들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원래 있던 현상이 심화 된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제 수업에서 겪는 곤란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온라인을 선호하게 되면서, 그런 방식에 맞지 않는 작품들과 그런 작품이 주는 특정한 경험이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온라인으로는 작품의 물질적이고 체험적인 부분을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달할 수 없는 그 부분, 물질에 대한 감각을 다루는 것이 미술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질문 3 > 언택트 시대가 되어 예술 측면에서 나아진 점이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답변 3 >
회의나 오프닝 파티, 네트워킹 파티가 줄어들고 협업에 있어서도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예술가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준다는 측면에서 더 나아진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작품 감상에 있어서는 많은 작품을 빡빡하게 두고 여럿이 보고 부대행사를 많이 하는 전시보다 적은 작품을 띄엄띄엄 두고 홀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는 전시가 미술작품 향유에 있어서도 더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향유하는 활동은 원래 언택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예술에 대해 토론하면서 예술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다듬기도 하지만,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이나 감동하는 순간에는 혼자이니까요.
질문 4 >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는 예술 측면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답변 4 >
저는 창작자로서 세 가지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미술이 비전공자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예술 작품은 그 분야의 이론이나 역사를 알지 못해도 그 의미나 감동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나 음악, 무용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연히 본 어떤 작품에 마음이 움직이고 오랫동안 여운이 남은 적이 있습니다. 그게 예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물질을 다루는 작업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디어가 중시되고, 그것을 물질로 구현하는 과정은 단순하고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상황을 자주 봅니다. 예를 들면, 작업 아이디어와 계획서를 보고 뽑은 뒤, 그 계획서를 그대로 작품으로 구현하라고 요구하는 미술지원프로그램에서 그런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에 있어서(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제가 아는 건 미술이므로) 물질을 다루는 과정은 굉장히 예민하고 복잡한 활동입니다. 연필의 물성을 이해해야지만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또 연필의 물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연필로 그릴 수 있는 그림,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만납니다.
미술은 물질에 명령을 한다기보다 대화를 하면서 노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예술을 만드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시간이 너무 적게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어떤 현상이나 개념을 소화시키기도 전에 빠르게 작품으로 내놓아야 하고, 한 작가의 작품을 너무 빠르게 보고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나 작가의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예술작품은 기존에 널리 알려진 틀에 딱 맞지 않는, 그래서 모호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액션처럼 멋진 미감, 영웅이 악역을 물리쳤을 때처럼 통쾌한 감정, 이렇게 이미 널리 알려진 미감과 감정이 아니라 모호해서 낯선 미감과 감정 말입니다. 좋은 예술 작품은 낯선 미감이나 감정을 감지하게 만듦으로써 미감과 감정의 폭을 넓힙니다. 그런데 낯선 것을 감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질문 5 >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답변 5 >
진부하지만, 올해 여러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불러서 다 같이 옥상에서 김장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김장은 커녕 만나지도 못하게 되었네요.
질문 6 >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영향을 받은 예술가나 인물이 있나요?
답변 6 >
이 질문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게 되네요. 너무 많아서 어떻게 써야 할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꼽자면.... 학부 1학년 때부터 대학 생활 내내 수업을 들었던 오귀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작업에 있어서 모든 선택들을 꼼꼼히 들여다보시는데 그런 작업 태도를 본받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또 최병수 작가,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업관? 작업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질문 7 >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7 >
답변 4에서 말씀드린 부분이랑 살짝 겹치는 이야기인데요, 미감과 감정의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다양한 형태의 미감과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멋진 액션, 빼어난 미모가 아니라 매일 보는 옆 사람의 얼굴, 흔하고 익숙한 동네 풍경에서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슬픔과 기쁨이 아니라 슬프면서 기쁜 것도 느끼게 하고... 사람이 모두 다르고 경험이 모두 다른데, 그 다른 것들을 섬세하고 다채롭게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