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무엇이어야 하나

언택트 시대 예술 디알로그 No.14

by 엘로디 옹그

예술은 예술 스스로 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드 쿠닝이나 잭슨 폴록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시절 자동기술법(automatism)의 추상적 조형성을 설명하려는 얘기가 아니다. 무의식적인 자발성을 지닌다고 해야 할까. 옆에서 동행하다가 꽁무니가 보여 속도를 내다가도 어린이가 어른의 발걸음 못 쫓아가듯 길 잃은 기분이 들 때면 예술의 인성을 느낄 때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 인성 참 고약하여 예술이 예술 좋은 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의 속도가 있고 그의 시대적 취향과 목표가 있는 냥 태도를 취할 때가 있다. 아방가르드에 이어 모더니즘이 그 전범이라고 구술하지만 이 또한 보지 못한 자의 유추이다. ‘따로 또 같이’ 형태로 예술과 동행할 수 있을까. 예술이 무엇이건대 우리는 일생을 예술과의 관계 정리에 얽혀 고민하는 것일까. 이번 인터뷰는 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남희 교육본부장님과의 내용이다.




질문 1 >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이후 어떻게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답변 1 >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만나는 가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과 작용에 대해 이론적 연구 및 전시기획으로, 또는 작품에 관한 글도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예술은 대면 중심의 세계로부터 비대면을 고려하는 태도에서부터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도 다른 사람들도 신중을 기해 만나고 대면의 가치를 깨닫고 있으며, 또한 영상 등 뉴미디어를 통한 대안들도 고민합니다. 다만, 뉴미디어에 접속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최근의 경험은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 삶의 우선순위이자 예술의 우선순위가 자연과 환경으로서의 현실임을 자각시키고 있습니다. 호흡하는 지구환경에 대한 인류의 책임과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됩니다.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분열이 아닌 연대와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은 존재론적 사유와 실천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지가 문제입니다. 이런 생각을 나누며 소통하며 예술의 사회적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질문 2 > 현재 하고 계신 일로 제일 힘들거나 곤란한 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2 >

아주 최근까지 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삶의 행태와 현재 대학에서 연구자로서의 삶의 양태가 좀 다릅니다. 힘들거나 곤란한 점이라기보다 인간 삶에서 늘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 대한 것을 다시 깨닫는 중입니다. 시스템 내의 창의적 사유와, 실천을 염두에 둔 독해와 연구를 기반으로 한 기획의 일은 새롭게 ‘입장(position)’의 차이를 보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규칙적 삶의 체계 내의 사유와, 비교적 자유로운 패턴에서의 연구는 인간이 입장으로서의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예술가적 상상력, 혹은 사유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현재적 삶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로 막연한 불안감도 있습니다. 매우 바쁘고 타이트했던 시간에 길들여졌던 몇 년의 패턴을 외부 조건이 아닌 내적 질서의 시간으로 바꾸는 중에 있는데, 지금은 사색 아니 멍 때리는 순간처럼 생각의 틈을 만들어 그간 바쁜 일정 중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순간이 행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연구를 하고,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일상이 제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지만, 객관화하고 균형을 맞추려던 기관에서의 관성이 여전히 제 안에 있고 아직은 생각의 미궁으로 빠져지지 않네요. 이것이 힘들거나 곤란하기 보다는 기획하고 사유하는 일에 과정과 연결을 먼저 생각하는 기계적 사고가 상상력을 저지시키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런 일들이 인간의 환경과 사유의 상호 영향관계이겠죠. 규칙적이면서 느슨함이 만들어지기 어려운데요, 사실 예술계는 유연하고 느슨함이 새로운 전환의 고리를 만들곤 하지요. 예술가들과 함께 제도가 아닌 커뮤니티에 의해 자유롭게 결합하는 연대, 기획자들, 큐레이터들의 따로 또 같은 생각들의 소통과 대화가 더욱 절실해집니다. 어쩌면 커뮤니티 안에서 자유롭게 따로 또 같이 얘기하고 전시도 만들고 하는 그런 작은 연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 사실 불완전한 존재라, 서로 모여서 모자람을 메꾸면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극인 인간적인 방식이죠. 그래서 모이는 게 중요합니다. 기획하거나 작업을 하거나 글 쓰는 사람들이 제도에 의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모이는 것 말입니다.


지금 기술문명 성장 가도에 있는 세계시민들의 사유는 물질의 소유와 자본의 축적이 아니라 공유와 인류의 미래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시각 변화가 절실하죠. 예술가도 기획자도 전시 매개인력도 각자의 관점에서의 문제와 갈등이 본질적으로 논의되는 선상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로 살아가기가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음을 당연시할 수 없는 일이며, 독립 기획자가 기획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불필요한 외적 요구를 수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래서 신진 예술가들이 중진 예술가로, 신진 기획자가 중진 기획자로 살아남는 관문이 더욱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 전체에 신선한 호흡을 만들고, 상상력을 불어넣어주는 사람들로 충분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예술계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고정화되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주 고질적인 어려움입니다.

질문 3 > 언택트 시대가 되어 예술 측면에서 나아진 점이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답변 3 >

지금의 코로나 시대, 말하자면 전염병이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게 했습니다. 물리적인 사회적 거리라는 것을 확보하는 중요한 안전 원칙이 되었는데, 이로써 예술은 더욱 만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물리적 상황에 의해 사회와 예술 사이의 거리두기로 인해 발생했는데, 어쩌면 예술가에게 일종의 ‘관조(contemplation)’라고 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맞이하게 했다고 볼 수 있어요.


예술이 그동안 지나치게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에 집중되어 발표해야 하는 무대가 늘 필요했고 그만큼 무언가에 쫓기듯 만들고 보여주는 것에 매달려왔다면, 지금처럼 비대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시대적 조건에 따라서 모이는 것을 잠시 정지하고 잠깐 더 생각해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일각에서는 상호 소통 방식이 의한 매체가 아닌 영상을 통해 미술, 음악과 같은 작품이 송출됨으로써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방식으로 인해 예술에 대한 빗물질화가 가속화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들이 있으나 오히려 그런 시대적인 조건들로 인해 예술에 다가서게 되는 즉 오히려 예술을 만지고 살피는 중요한 요건이 대두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라는 것이 본래 일반적인 생각 너머에 있는 무엇이고 그것이 곧 세계에게 주는 가장 커다란 선물인데, 우리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 세계에 대한 것이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생겨날 수 있습니다. 쉼표, 성찰의 시간, 새로운 방법론을 고민하는 시간으로 작동할 수도 있으며 예술의 가치나 향유의 방식들이 더 많이 고민되고 변화도 많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4 >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는 예술 측면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답변 4 >

코로나 계기 때문에 다시 생각하게 했던 것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예술이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예술이라는 것이 예술 자체로 예술만이 좋은 예술이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술이 현실과 유리되어 왔던 시간과 측면도 꽤 컸던 것 같습니다. 설사 예술가가 현실에 천착하는 작업을 할 때조차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현실의 사건들이 크게 다가옵니다. 제게는 요. 예술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특별한 이슈이거나 사적인 사건으로서 세계가 만들어지고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런 것을 깨닫게 해주었네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에는 인류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미래 인류는 어떻게 지금 삶에서 연계되어서 잘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등이 예술계도 해야 하는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환경의 문제, 우리 호흡의 문제, 우리 물의 문제 등이 삶과 예술의 중요한 테제로 등장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죠. 예술가가 물질이나 공기로 개발자처럼 세계를 바꿀 것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개발자, 과학자가 놓치고 있는 미래에 정말 소중한 이야기들을 꺼내고 거기에 상상력을 불어넣어주는 일을 하겠지요. 예술이 무엇이어야 하나 라는 테제나 예술의 정의에 대한 큰 방향이 인간으로서,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가 반영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울 크로첸(Paul Cruchen) 이미 2000년에 인류세를 제안하면서 지구의 지층, 대기의 문제들, 플라스틱과 닭뼈, 오존층 등의 지금의 역병이 올 수 있다는 여건을 제기했음에도 우리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반성을 합니다. 예술하는 사람이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예술의 재료가 무엇이고, 기술이 무엇이고, 방법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고 현실과 더 밀접하게 미래에도 생명과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지금의 예술이 가져야 하는 책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존의 삶, 함께하는 예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거죠.


질문 5 >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답변 5 >

올해 하고 싶었던 전시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이얼로그(Dialogue)>라는 제목의 전시였는데 ‘듣는 감각’과 ‘보는 감각’에 대해 소외와 차별, 배제가 드러나는 상황과 이를 넘어선 시도들을 감각들의 소통으로 생각해보고자 했습니다. 장애, 성, 인종, 결국 문화의 패턴 등이 이 감각의 문제에 층을 이루고 있고, 가장 본질적인 것에서 지금의 삶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또 기회가 되면 시도하겠지만, 현재로선 숙제였는데 못한 게 되었어요. 다양성이라는 보편 언어로 표현되어있지만 타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과 이데올로기가 너무 많은 우리의 현실에 은연중에 고착이 되어있는 좋지 않은 관행들을 감각을 통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비대면 시대가 오면서 또 다른 관점에서 소외가 생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도 역시 감각은 중요한 작용인이 될 것 같습니다. 사회적 거리가 오히려 사회적 소외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죠. 거리두기로 생겨난 단절과 소외를 감각으로 다시 연결하게 하는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숙제도 더해졌습니다.

질문 6 >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영향을 받은 예술가나 인물이 있나요?


답변 6 >

가장 인상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중학교 2학년 때 정씨 성을 갖은 친구였는데 제게 중요한 얘기를 해줬어요. 저는 친구들과 수다떨고 놀기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평범한 아이였는데, 그 친구가 짝이 되면서 처음으로 큰 변화를 경험했어요. “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너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어라 스스로를 격려해라.” 지금 생각해도 그런 말을 중학교 2학년 아이가 해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이었고, 좋은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그 당시 맞이한 미션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뛰놀던 제게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말이 믿고 싶어졌어요. 괜찮은 사람이 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공부도 조금 하게 됐고 많은 변화가 왔어요. 그 친구에게 정말 많이 고마웠어요.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죠.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네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했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번 만났는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여전히 선의지를 주변에 전달하고 있었어요. 선한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힘이나 지위를 갖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친구예요. 그 친구의 지지와 말이 제겐 영원히 좋은 에너지일 거 같습니다.


질문 7 >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7 >

예술, 예술가를 생각해보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예술가이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는 존재이죠.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향해 가던지, 예술계의 삶은 세계의 변화를 위한 신선한 호흡이나 사고의 울림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방법은 제각각이겠지만 지금의 현실과 미래의 오늘 사이에서 한발 먼저 사유하고 움직이는 게 하는 게 바로 사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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