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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May 26. 2021

유리라는 재료의 심미성

김포 작업실에서 허혜욱 작가

미술 전시를 그간 기획해오며 공예분야 작품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음을 솔직히 밝힌다. 공예분야에 대한 어둑한 동경심 정도만 지니고 전시 안에서 다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기능성을 중요시하는 특성으로 사실 예술적 검토보다 실생활 측면에서 구입을 해서 사용하는 여부에 대한 검토만 있었다. 신속하고 생기발랄한 개념 지향적인 컨템포러리 예술이나 간혹 만나는 노동집약형 설치미술 앞에 우선적으로 감탄사를 내놓았다. 공예와 비공예사이 고심하는 섬세한 개념의 공예 작품들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


김포아트센터에서 다음 달인 6월 18일 오픈하는 전시 <Frairie Land>(초원산방)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김포문화재단의 지원공모사업으로서 동양화부터 공예, 미디어아트까지 신진 작가들과 중진 작가들로 각양각색 10인이 선정됐다. 선정된 작가들의 신작을 가지고 전시를 만드는 것인데 이번 전시는 기획 방향이 잡히고 작품을 선정한 방식이 아니라 이미 만들기를 시작한 신작을 가지고 컨셉을 잡는 기획자의 의도치 않은 늦깎이 등장 방식이라 미학적 입장보다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시 소개는 근일로 하고, 전시를 위해 첫번째로 만난 유리 공예 허혜욱 작가의 스튜디오 방문 일담을 자유로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허혜욱 작가님께 게시 허락받은 더 많은 정보!

https://www.facebook.com/khyewookhuh

https://www.instagram.com/hyewookhuh

https://hyewookhuh.com


아래 내용은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늦은 오후에 나눈 대화이다.


따라붙는 이미지는 아이폰으로 필자가 찍은 기록사진이다. 작품은 늘 직접 보시는 걸 추천! 참고용으로 작품이미지 한 장을 올렸지만 유리 특성상 반사광이 잡혔다. 눈으로 보는 밀도감은 어떤 카메라로도 찍어낼 수 없다. 특히나 햇살을 관통하며 색빛을 자아내는 유리 공예작품의 다수 등장에 당황했다. (제목 배경 이미지)

   


   

Q. 작가님 스튜디오가 중층구조로 굉장히 좋아요. 다른 작가님들이 탐내할 만한 공간인데요. 여기서 만드시는 작품에 대해 설명 좀 부탁드릴께요.      



A. 유리 작업에 적합한 공간이고, 옆에 있는 공장이 전기관련 전문기술공장이어서 작업에 필요한 기자재의 디자인을 전부 다 넘겨드리고 여기서 제작을 했었는데 이 공간이 비어있다고 해서 어떻게 하다보니 들어앉은 것이죠. 2004년에 귀국하고 2006년에 최종적으로 이 스튜디오로 자리를 잡았죠. 제 작업은 컴프레셔가 필요하고 가마들부터 시작해서 온갖 기자재 전기를 많이 쓰다보니 전기용량이 넉넉한 스튜디오가 필요했어요.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에요.      


Q. 작가님 자료 속 작품 이미지를 보고 눈으로 짐작은 했지만 유리라고 쓰여 있는 자료가 없어서 재질이 궁금했어요. 그리고 나이를 알지 못했는데 말씀해주셔서 좀 놀랐네요. 그럼 삼십년간 작업을 해오신 건가요. 오랫동안 혼자 움직이며 일을 하는 것의 어려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시점이 중요하진 않지만 94년도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2002년도에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는 기준으로는 작업을 해온지 삼십년이지만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시점으로 말을 하게 되요. 그래서 이십년동안 작업을 해온 작가라는 말이 가깝다고 생각해요. 중년 작가라는 것에서 중년이라는 단어에 편안함을 갖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혼자서 움직이는 사람일수록 조직화된 매뉴얼까지는 아니지만 체계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혼자일수록 일의 선후를 살피고 선택해서 나름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끝까지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으니까. 중년의 소리에 마음이 편치 않은 작가들 대부분은 그 시간의 무게만큼 무엇을 했나, 어디까지 왔는가에 회의를 갖는 사람들일 거예요. 작업을 오래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불완전함에 눈을 뜨게 되니까요.      


Q.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시점이 흥미로운 표현같아요. 공감도 되고 이제 프리랜서 2년차인 저의 십여년간 기관 경력을 생각해보게도 하네요.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분들이 선정되셨는데 제가 첫 만남때 말씀드렸듯 작가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본인 스스로에게 말거는 시간으로서 사용하시는 무대가 되었으면 해요. 작가님이 김포문화재단 김포아트센터에서 보여주실 작업에 대해 궁금해요.     


A. 이번에 집중해서 디알로그를 해보려는 <eye> 작업이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작업을 발전시킬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서였어요. <eye> 이전의 작업과 이후의 작업, 그 틈에 서 있었다고 할까요. 올해부터 그간의 과정을 재정비하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죠. 이전에 했던 모든 추상적인 작업은 바로 ‘나’에요. 작품을 보게 되면 작업의 전체적인 느낌이 있을 뿐이지 시각적인 대상이 없어요. 형태적으로 뭔가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감각에 충실하게 그려내려고 했어요. 2010년도에 어떤 계기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타인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만든 사회에 대한 관심. 침묵의 대화라는 것이 초반 <eye> 작업의 주제였어요. 공유되는 느낌은 서로가 그냥 아는 것이지 말로 공유되지 않는 것이더라고요. 대화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니라 이미 그들이 같이 공감하는 것이 나에게 전달이 되었다면 무언의 대화는 일어난 것이죠. Yes 또는 No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의중이 전달되는 거예요. 눈빛으로 말이죠. 침묵의 대화를 통해 전달이 되는 감정의 선은 상당히 다양한데 호기심, 무시, 분노, 질투, 기쁨과 슬픔 등등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Q. 2017년도 교통사고와 연이어 스튜디오에서의 잘 알고 사용하던 기계로부터 다쳐서 수술한 경험까지 잠깐 말씀해주셨는데, 그 기간 동안 다른 공부를 하셨다고요. 잘 쉬어야할 시간에 어떤 공부가 그렇게 재미났을까요.     


A. 관광통역에 관심이 생겼어요. 작업을 할 수 없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자격증을 취득해야하는 일이더군요. 이 자격증을 따려면 한국사비중이 큰데 공부하다보니 옛날이야기가 재미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사검정시험 공부까지 하게 되고요. 관통사(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재단 등의 국가기관에서 주관하는 관통사 재교육프로그램을 무료로 들을 수 있어요. 나라에서 관광사업증진에 투입되는 인력에 많은 투자를 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됐고, 전문적인 재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점도 흥미롭고요. 코로나 이후에 관광사업이 타격이 커서 포스트코로나관광사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덕분에 교육프로그램도 콘텐츠나 플랫폼개발 등의 교육프로그램이 많구요. 그 부분의 고민은 미술계도 예외가 아닌지라 덕분에 이런 저런 좋은 아이디어를 듣고 있어요. 외국에서 친구들, 콜렉터, 작가들이 들어오면 함께 여기저기 다니며 여행했던 경험이 있어서 아주 낯선 일이 아닌지라 도전했죠.      


Q. 공예에 대한 국내의 사정이 달라서인지 틈이라는 말씀을 하시네요. 이미 그 '틈'이 어디로 이동해야하는 순간점이 아닌 계속 고수하실 위치로 느껴져서 저는 그 '틈'이라는 곳에 관심이 더욱 갑니다. 틈에서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 것이 이미 공예라는 코어를 갖고 계셔서 모든 사고들이 생산적으로 작동되는 것 같습니다.


A.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에 있어서 현대 공예가 그리 저변이 넓지 않아요. 작가 입장에서 작업의 디벨롭에 있어서 장르의 구분은 거추장스러운 옷에 불과해요. 그럼에도 장르를 구지 따지자면, 매체적인 관점에서는 공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재료에 의해서, 하나의 재료에 기대서 말이죠. 공예라 불리는 작업은 그 밑바닥에 사용하는 재료에 대한 절대적 시간의 투자, 오랜 트레이닝의 결과로 얻어진 밀도있는 기술의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재료의 심미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그 점에서 유리를 제1의 재료로 선택해서 캔버스로 사용하고 있는 나의 작업을 공예 장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죠. 개념적인 관점에서는 순수미술이 나만의 생각, 나만의 표현을 주장한다면 공예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이의 생각, 쓰임 등등. 이제는 터부시되는 지점이 생겼으나 타인이 갖는 호불호를 배려하는 것을 배제하고 생활에서 쓰임이나 기능을 가져올 수가 없거든요. 반면 제 작업은 지극히 이기적인 작업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어느 한 장르에 속하기는 애매한 경계선에 서 있는 셈이죠. 국내에서는 유리오브제를 아직도 낯설어 하는 지라 해외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활동을 많이 해 왔고 상업적인 측면도 외국에서 반응이 더 많은 편이예요.     


Q. 또 다른 프로젝트로서 어떤 것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A.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 관심이 있었는데 작업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쉽지만 현재로선 공모를 마무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주제가 ‘공생의 도구(Tools for Conviviality)'인데 전시주제가 마음에 와 닿아서 준비를 하게 되었거든요. 해석의 여지가 넓은 주제인데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세상을 제어할 수 있는가라는 대 주제를 담고 있는데 제가 현재 작업에서 고민하는 부분과 일부 접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첫 번째 도구가 또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신체적으로 유약한 개체로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아닌 타인과 모여 살며 집단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조직을 유연하게 유지하는 공생의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다는 것이죠. 생존을 위해 선택한 타인, 그리고 공생을 위해 타인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 모여살기 시작한 이래로 소통은 인간사회의 큰 쟁점이 되었고 소통에 있어 우위를 점하는 누군가는 사회에서 좀 더 편하게 살게 되죠. 저는 이 소통이라는 부분에 관심이 있어요. 특히 언어로 전달하지 않는 또는 하지 못하는 무언의 소통은 생각보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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