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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Jan 11. 2024

윤희수 개인전 《샴피뇽-모홀》 서문

명지대 앞 청년베프에서 오픈한 전시('24.1.11-31)

윤희수 개인전 《샴피뇽-모홀(champignon-mohole)》 서문

- 글. 엘로디 옹그(큐레이터)

“가장 풍부한 사건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흔히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 위에 눈을 열기 시작할 때, 이미 우리는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 다눈치오, 『죽음의 명상』, 불역판, 19쪽

  윤슬의 매혹으로 우리는 바다의 외부에 머문다. 물결에 반사된 빛은 견고하고 일정하게 눈을 만져 질문이 멈춘 상태에서 바다 경관을 충실히 바라보도록 한다. 액체지만 표면을 갖고 있는 바다는 수많은 물질들로 소리를 내고 있다. 눈앞에 반영된 보이는 세계보다 소리에 진리가 있는 듯 시각을 먼 곳으로 보내 응결시키고 귀를 기울인다. 바다 표면에 뿌려진 빛 아래로 열리는 액체 세상의 소리는 인간의 가청 주파수와 다르게 작동하지만 더 넓은 세계를 추구하는 우리는 더 이상 바다의 외부에 머물지 않고 바다로 들어간다. 기체 세상의 일부 음장(Sound Field)에 최적화되어있는 인간에게 액체 세상의 소리는 둔탁하고 느리게 전송되는 인상을 지닌다. 흡사 다른 세상의 소리처럼, 혹은 오래된 거리를 여행하고 이제야 우리에게 닿은 소리처럼 아득하지만 비가시적 물성을 띄고 존재를 드러낸다.

  물결의 파동을 채집하는 사운드 조각가 윤희수 작가의 3회 개인전 제목인 《샴피뇽-모홀(champignon-mohole)》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요하게 소개되는 작품인 <웅성거리는 바다의 변주 지점으로, sea variation point>를 조형적으로 닮은 버섯의 불어 표현으로 '샴피뇽(champignon)'과 지구 탐색 프로젝트였던 '모홀(mohole)'의 두 단어를 병치시켜 만들어졌다. 사운드 조각(Sound sculpture)을 만드는 윤희수 작가는 미술의 오래된 전통인 재현의 방식으로 바다의 논리, 인간의 가청 환경으로 작품들을 배열하고 당신의 감각이 오고 갈 빈 공간을 둔 채 전시를 연다. 오랜 풍파와 풍식으로 깎이고 다듬어진 해변 장소들의 흔적들에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편집하고 돌부리 사이 혹은 모래 결을 휘감아 물러나는 파도의 물결, 바다의 표면을 관찰하며 작가의 눈과 귀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귀속된다. 작가가 즐겨 읽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 중 『팔로마르』에 나오는 파도의  물마루들은 솟아올라 물 그림을 그렸다가 없애고, ‘비스듬한 추진력’과 ‘뒤로의 추진력’을 불균등하게 반복하는 움직임으로 묘사되어있다. 파도의 양가적이고 자기 부정적인 움직임은 해변에서 시작하여 결국 먼 바다를 향하는 데 마치 파도가 추구하는 움직임처럼 작가는 스스로 깊어지고 솟아오르기를 무던히 반복하며 지웠다 그리기를 반복하며 보이지 않는 비전을 품고 장대한 여정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먼 바다의 진리를 향하는 작가의 비스듬하고 뒤로의 움직임과 손끝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으로서 육중한 대형 따개비 형태의 메탈 조형물 <따개비 1호기(Barnacle unit 1)>와 <따개비 2호기(Barnacle unit 2)>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따개비는 보통 다른 바다생명체 혹은 인간의 선박에 고착하여 활동하며 간혹 고착 물건이나 생명체의 추진력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갑각류의 일종이다. 이 고착 생명체의 이름을 딴 두 개의 사운드 조각 <따개비> 시리즈 작품은 내부에 특정 소리 장치(microphone)을 장착하고 기체와 액체 세계의 경계면, 즉 인간의 개입이 닿는 수중의 어느 정도 깊이로 출정을 나가 작가를 대신하여 소리를 채집해오는 대체물이기도 하며, 내장 스피커와 앰프를 머금은 소리송출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작품 제작에 있어 산업재료인 메탈 재질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해파리와 버섯을 닮은 생명체 <웅성거리는 바다의 변주 지점으로(sea variation point)> 작품이 그러하다. 군집되어 기체와 액체 세상의 소리로 뒤엉켜 웅성거리며 그에 반응하며 빛을 산란시킨다. 셀 수 없는 바다를 하나의 방울 단위와 쇳물 드로잉으로 제작하여 바다 물마루의 긴 파도와 같이 들쑥날쑥한 움직임으로 벽에 줄지어 맺혀놓은 여러 개의 설치작품 <수중물(en grattant le mur de la plage)>도 있다. 작가의 쇳물 드로잉은 사운드 조형물들과 평면작업 <바다-폭풍우(sea-storm) #1>에서 두드러지는데 액체의 쇳물이 작가의 움직임으로 조형을 일으키고 쇳물의 흐름이 순식간에 암석과 같이 굳어져 우리에게 작품으로 선보이는 매력을 갖고 있다. 작가가 바다의 물질들을 다채로운 색상과 유영하는 선들로 감각하며 연구하고 있는 아이디어 습작도 있는데 이것들은 종이 화면 속에서 얽혀있는 다양한 드로잉들로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우주의 소립자들의 진동으로 지구 밖 태양풍까지 소리로 들을 수 있듯 바다 외부 경관에 묶인 눈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동한다면 우리는 바다 속 물질들의 진동으로 수많은 소리를 상상할 수 있다. 상상세계의 물질들을 보이는 세계로 끄집어내며 조형하는 작가는 바다 속 수많은 생명체들과 물질들이 보내주는 소리들을 채집한다. 수십 년 전 인간이 도달한 적 없는, 혹은 도달할 수 없는 지구 내부를 탐색하려고 지구 지각에 구멍을 뚫은 거대한 사건, 바로 ‘모홀 프로젝트(Project Mohole) (1958~1966)’가 일어났다. 이 역대적인 프로젝트는 우주탐사와 달 착륙에 주목하던 시기에 국제해양학, 지질학계를 흔들기 시작했고, 지구 시추에 성공을 맞본 인간의 상상력은 마치 예술가의 무모한 탐구력이 명작을 내놓듯 다른 심해 시추 프로젝트로 이어져 현실화시켰다. 작가가 전시의 제목에 붙여놓은 ‘모홀’은 과학의 무모한 도전, 파도의 비전과 같이 작가의 동력이자 철학인 것이다. 듣기와 숨쉬기에 낯선 액체 세상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이러한 미지의 물질들을 탐구하는 것은 예술가의 일이다. 약 45억 년 전 지구 탄생에서 물의 생성으로 거론되는 혜성기원설과 또 다른 가설로 2001년 마크해리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가 탄생하던 지구 암석인 크롬 철광 속 지르콘(Zircon) 광물을 통해 지구 내부에 이미 물 분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혀졌다. 지구 초기 광물에 물 분자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나 지구 표면의 70% 이상이 물에 덮여있고, 우리 몸의 70%가 물로 구성되어있는 것은 지구인인 우리의 기원이 물이라는 물질을 향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작가가 물에 천착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물과 인간 그리고 지구가 같은 물질로 우리의 기원에 닿기 위한 끌림일 수 있다. 전시장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가? 기체 세상에서 바다 파도 소리를 듣는 것보다 액체 세상의 소리가 좀 더 흥미로워지지 않았는가? 작가의 비전은 여기에 있다. 먼 과거로부터 온 소리들을 채집하여 발산하고 있는 이 사운드 조각 작품들을 통해 수성물질인 우리가 있었고 앞으로 있을 세계에 대해 감각해보도록 당신을 이 곳으로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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