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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Jan 03. 2024

마지막 과제

할 포스터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세지

00학번으로 다닌 학교를 22학번이 되어 다시 들어갔다. 학부때 배웠던 교수님 한 분과 세 분의 교수님을 만나 2년간 지도를 받았다. 36학점을 전시사, 미술경영, 미술관학, 비평론, 작가론, 미술방법론, 신유물론 등으로 예술과 실천의 큰 줄기를 잡으려고 노력은 했으나 여러 갈래에서 길을 잃어본 것은 분명하다. 공부를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에게 22년만에 다시 대학원 커리큘럼을 따라가본 경험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인생의 적합한 길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다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자세는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지도 속 명확한 대로를 따라 살아온 내게 최근 수업들이 남긴 것은 골목길에서 헤매도 불안하지 않은 것이다. 길을 잃었어도 뜻 밖의 만남을 발견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오랜만에 게재하는 이 글은 박사과정 4차 학기 <동시대미술론> 수업에서 작성한 코스웤의 마지막 과제이다. 수업을 이끌어주었던 김보라 교수님은 늘 학생보다 더 열심히 교재를 정리해왔고 수강생의 질문을 메모하고 답변을 준비해준 감동적인 교육자이다. 수업은 동시대미술을 두고 회자되는 이론을 다루는 교재, 소논문, 논평 등을 중심으로 읽어오고 각자 이해안가는 문장, 공유할 문장, 영감주는 문장 등 세 지점을 들고 와서 나누는 형태였다. 수업이 모두 끝났지만 2년 전 질문들인 '무엇이 동시대미술인가,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에 답변을 찾지는 못했다. 수업때 왕왕 얘기됐던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모든 것에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조금 알게되었다.


마지막 과제는 할 포스터의 아래 책에 대한 서평이었다.    



학습교재 정보 : 할 포스터, 조주연 옮김(2022) 『소극 다음 무엇? 결괴의 시대, 미술과 비평』(원서 : What Comes after Farce? Art and Criticism at a Time of Debacle, 2020. Verso Books.), 워크룸


목차


테러와 위반

1. 외상의 흔적 Traumatic Trace

2. 부시 시대의 키치 Bush Kitsch

3. 편집증적 양식 Paranoid Style

4. 거친 것들 Wild Things

5. 트럼프 아빠 Père Trump

6. 공모자들 Conspirators


금권정치와 전시

7. 신이 된 물신 Fetish Gods

8. 아름다운 숨결 Beautiful Breath

9. 인간의 파업 Human Strike

10. 전시주의자 Exhibitionists

11. 그레이 박스 Gray Boxes

12. 바탕칠 Underpainting


매체와 픽션

13. 자동 피아노 Player Piano

14. 로봇의 눈 Robo Eye

15. 박살 난 스크린 Smashed Screens

16. 기계 이미지 Machine Images

17. 모형의 세계 Model Worlds

18. 실재적 픽션 Real Fictions

 

□ 발췌 문구들


 ○ 저자의 의도 및 내용

“이 원고들은 극도의 불평등, 기후 재난, 대중매체의 분열은 물론 전쟁, 테러, 감시도 일삼는 현 정권에 직면하여 미술과 비평과 소설에서 일어난 변화를 따져본 논평이다. 이 상황을 가늠해 보려고 나는 광범위한 작업들을 다양하게, 즉 징후적 표현, 비판적 탐색, 대안적 제안으로 고찰한다. 1부의 초점은 9.11 이후 비상사태 시기의 문화정치로, 외상, 편집증, 키치의 활용과 남용을 다룬다. 같은 시기에 시장과 미술관은 둘 다 거대하게 확장되었고 미술가들도 이 스펙터클한 변화에 비판적으로, 또 다른 식으로 대응했는데, 2부는 이 시기에 미술 제도를 개편한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되짚어 본다. 마지막으로 3부는 최근의 미술, 영화, 소설에 반영된 매체의 변형을 개관한다. 여기서 탐색된 현상 중에는 ‘기계 시각(machine vision, 인간의 개입 없이 기계가 다른 기계를 위해 만든 기호), ’가동적 이미지(operational images,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개입하는 이미지), 우리의 일상생활에 무척이나 널리 퍼져있는, 정보의 알고리듬 스크립팅이 있다.”(8쪽)


“그럼에도, 내 글의 세 부분은 각각 “허구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유토피아”(utopian glimmer of fiction)를 제공하는 실천들로 결론을 맺는다.(9쪽)


 ○ 책 제목 관련 설명

“원래 소극(‘속을 채우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farcir에서 파생된 말)은 종교극의 막간에 나왔던 희극이었다. 그렇다면 소극은 중간에 끼어있는 순간, 안토니오 그람시가 1930년경에 분절해 낸 구정치 질서와 신정치 질서 사이의 ”병적인 공백기“ 최소한, 막간극이 분명히 시사하는 것은 다른 시간이 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기가 나의 다른 용어 결괴(debacle)가 작용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 말도 ‘몰락, 붕괴, 재난’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에서 파생되었지만, 뿌리는 ‘해방시키다’라는 뜻의 débâcler이고, 이는 ‘문의 빗장을 열다’라는 뜻의 중세 프랑스어 desbacler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봄에 홍수가 날 때처럼 ‘강 위에서 얼음이 깨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결괴는 힘이 느닷없이 방출되는 것으로, 통상은 나쁜 쪽이지만 좋은 쪽으로 방출되는 것도 가능하다. ‘결괴’는 심지어 관례, 제도, 법률을 모두 깨뜨리고 다른 식으로 만들어내는 변증법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정치적 격변기인 현 시기의 기회다. 분열적인 비상사태를 구조적 변화로 전환하는 것, 아니면 최소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고 권력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회질서 안의 균열들에 압박을 가하는 것.”(9~11쪽)


□ 서평

할 포스터는 미국 신자유주의 사회를 중심으로 미술이 그에 비판적으로 대응하거나 혹은 사회 시스템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발견하는 미술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미술에서 축적해온 역사 속에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 결과물들을 위치시키기도 하고 철학이나 문학에서 연계될 수 있는 상황들을 나열하면서 비판적인 관점으로 입체적인 글을 써내려간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징후적 표현, 비판적 탐색, 대안적 제안으로’, ‘미술과 비평과 소설에서 일어난 변화를 따져본’(8쪽) 매우 분석적이고 치밀한 18편의 논평들을 ‘테러와 위반, 금권정치와 전시, 매체와 픽션’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엮어 출간한 책이다.


저자는 미술을 중심으로 철학, 소설까지 연관 지어 서술 하면서도 복합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질문 그 자체로 결론에 배치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기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 문제의식에 직면하게 하는 서술적 장치이기도 하다. 작가론을 펼치는 질문을 제외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질문을 결론으로 삼으며 글을 마무리 짓는 지점으로서 다섯 곳을 살펴본다면, 첫 번째로 “외상의 흔적” 글에서는 ‘9.11이후 우리가 세계를 보고 경험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추적하며 9.11유류품이 성물인 동시에 증거가 되는 이 외상적 심미화가 최선의 대응인지(24쪽) 질문을 던진다. “신이 된 물신” 글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촉진한 ‘자기 가치’를 인적 자본으로 만드는 인간의 기술 세트를 언급하며 「새로운 제프 쿤스」 속 어릴 적 제프 쿤스가 ‘이런 미래를 응시하며’ 우리를 바라보는지(82쪽), “그레이박스” 글에서는 ‘트럼프주의 시대 미술관에서 특히 긴급한 질문’으로서 ‘돈이 충분히 깨끗한 때는 언제고, 반대로 너무 더러운 때는 언제’인지(120쪽)를 묻고 있다. “박살 난 스크린” 글에서는 40년 전 자크 데리다가 퍼부은 “종말론적 어조”의 질문들을 되뇌며 “우리는 지옥의 유황불 같은 우파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이런 때 좌파 비평가들의 어조는 왜 이렇게 종말론적이란 말인가?”라며 개탄하며, 마지막으로 “기계 이미지” 글에서는 서두에서 밝힌 질문인 ‘기계 시각이 재현, 의미, 비판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 관념들에 영향을 미치는가?’(201쪽)를 언급하며, 의사소통과 의미가 그 목적을 잃었을 때 비판이 나아가야할 길과 함께 이 세계에서 ‘필수적이라고 꼽히는 능력’을 묻고 있다.


어쩌면 자기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자 태도들로서 저자는 세계를 탐색하고, 진단하고, 다음으로 가는 틈새를 발견하며 동시대 매체론과 미학을 정립하고 있다. 이 틈새를 발견한다는 것은 역자 후기에서 한 번 더 강조한 ‘소극 다음에 올 “다른 시간”을 위해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을 내다보는 것’(241쪽)일 수 있다. ‘세계의 전형은 시뮬라크럼이 된 스펙터클의 세계, 즉 재현이 반복을 통해 지시체와 기의 모두로부터 풀려나 자유 유영을 하는 듯 한 세계’(230쪽)이며, ‘실재는 외상적 정동’(222쪽)이며, 히토슈타이얼이 묘사하듯 ‘동시대의 지각은 상당 부분 기계적’(177쪽)이기 때문에, 오늘날 능력에서 중요한 문해력은 디지털 복제와 인터넷 유통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포맷(176쪽)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예컨대 기계의 ‘광학적 무의식’에서 ‘알고리듬적 비의식’(177쪽) 혹은 ‘탈주체의 보기’나 ‘시각적 비의식’(170쪽)으로 헤쳐나가는 하룬 파로키, 히토 슈타이얼과 같이, ‘재현에서 활성화로 목적이 바뀐 이미지’(‘가동적 이미지’, 196쪽)를 끄집어내는 트레버 파글렌과 같이 말이다. 또한 “상태들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 “평형 상태의 취약함, 그리고 서사에 틀을 제공하는 안정성과 장소의 감각을 창조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세라제와 같이 문해력을 키워볼 수 있다. 다시 저자의 질문들로 돌아가 답변해보자면, 외상적 심미화는 결코 최선의 대응이 아니며, 신자유주의 속 인적 자본으로 읽히게 되는 인간으로 변화했으나 종말론적 개탄이 아닌 동요하여, 사라 제의 미술과 같이 ‘질서와 무질서, 항상성과 엔트로피, 자기생산적 확장과 파국적 붕괴 사이에서 동요’(‘동요하는 것은 스칼라적이기도 하다’, 205쪽)를 통해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 오늘날 기술의 결과가 우리의 통상적인 관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그러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 미학적 영역에서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세계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탐색할 때 ‘다음’으로 갈 수 있고, 이러한 실천은 미술과 비평의 주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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