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예술 생태계. 미래? 예술 생태계? 미래 예술? 생태계
생각 아카이빙.
유럽의 유명한 갤러리 리포트를 다운로드하여 참고할 일이 있었다. 이름하여, 미래 예술 생태계. 간단하고 이쁘장한 다이어그램에 용어들은 간단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오픈되어 공유되고 있었다. 미래? 그것도 예술 생태계에 관한?
국내를 생각해본다. 곰곰이 어떤 예술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지 우리네들은 어떤 구성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말이다.
창의성은 왜 다듬어져 평준화되는지. 왜 미술관 학예사들은 본인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관철시키기 어려운지. 무슨 일이 일어나서 예술 중심이 와해되고 있는지. 새로운 예술 생태계가 형성될 좋은 징조인지 오판인지 나쁜 징조인지. 몇 초 만에 다운로드를 허용하는 넓은 아량의 리포트. 그 제목과 간단한 다이어그램으로 심각해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무리 수평적 구조 IT회사라도 아이디어가 올라가다 (늘 올라간다.) 보면 윗선에서 다른 사업으로 재단되어버린다고 말이다. 과연 결재시스템의 문제인가. 그들은 가능한데 우리는 어려운 지점이 무엇일까.(역으로 우리는 가능한데 그들이 어려운 것도 있겠다.)
자. 그럼 개인단위의 활동은 자유를 담보하는가.
현대미술 월간지 기자나 큐레이터, 평론가들은 “다소” 본인의 독창성(singularity)을 표출하는데 기본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생태계라서 생존원리가 작동하는 것일까 심지어 본인의 일상 삶에서도 예술 시스템의 어떤 억압이 작용하는 듯 보인다. 넘지 말아야 할 개념적 영역(frontier)을 의식하는 자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개인의 사유가 압축되고 다시 농축되어 가히 독한 현대미술에 한 명의 자아로 감당할 수 없이 장기간 노출되어 그런가. 성장하지 못해 뿌리가 자라지 못하고, 본연의 삶이 사라지고 허세와 거짓으로 장식하는 형태를 취한 채 스스로를 속여 넘기는 시스템?! 도 공존한다. 나는 불현듯 이것을 ‘현대미술 피폭’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contemporary art exposure..
생태계는 다 다른 생명 주기를 갖고 있다. 죽고 태어나는 순환원리 아래 길게 살 수도 짧게 살기도 한다. 한 세기가 넘게 개념 놀이를 내비친 현대미술이라서 그런지 비전문가들이 프리패스로 들고 난다. 십 년 남짓 융복합예술이라는 정책이 놔준 오작교를 통해 이리저리 장르 구분 없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기도 한다. 정책(정권) 아래 좌지우지 되는 기관들은 각자의 아젠다는 잊은 채 무게중심을 끊고 애드벌룬 줄을 잡고 함께 둥둥~
목질화는 그래도 필요하지 않을까. 산소는 누가. 새싹도 틔워야하지만 그래도 누구는 미래 예술 생태계에서 나무가 되어 기초 건강을 다져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