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는 세종대왕도 힘들어하실 듯

1인 출판사 창업과 첫 책 발간까지의 이야기[5]

by saryu

<코드 3개 외웠으면 밴드를 하자!>를 출간하고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12개 밴드 중 6개 밴드가 나와줬고, 소수였지만 열정적인 관객들이 함께한 덕분에 소요 시간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2시간 이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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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나보다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밴드들이 주인공이라 여겼기에 밴드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던 중 돌연 "책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뭐였나?"라는 질문을 받게 됐다. 글쎄. 우선 "밴드 저마다의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들, 개성을 어떻게 하면 청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가 큰 화두였고 그래서 어투, 말버릇 등을 잘 살려내는 게 쉽지 않았다" 정도로 답하긴 했으나 사실 너무 무거운 답으로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한 공식적인 답변일 뿐이었고 실제 힘든 부분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책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 글쓰기가 자체가 가장 어려웠다. 아이디어, 기획, 인터뷰 진행, 녹취, 녹취 내용 글로 옮기기(네이버의 '클로바'란 서비스가 없었다면 어쨌을까. 아찔하다), 기본 3차례 이상의 쓰고 고치기, 교정교열, 끝없이 반복되는 다시 쓰기.

떠다니는 말과 생각을 글로 구체화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서 느낀 어려움은 이후 물화 과정 즉, 디자인, 인쇄, 제작, 배본사, 서점 계약 등과 같은 복잡하고 번거로운 작업들이 사소하게 느껴지게 만들 정도였다. 쓰는 것 외에 또 황당했던 것은 500여 페이지의 글을 한차례 마무리하고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분명 잘 정리했다 생각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임에도 다시 보니 어떻게 이런 조악한 상태로 넘어갔던가 싶어 황당해지기 일쑤였고 과연 이걸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종종 들곤 했다.

누군가에겐 초보적이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는 푸념일 것이다. 어쨌든 글의 밀도, 함량을 높이는 것은 역량의 문제이니 키워야 할 터이고 그외 글의 외양을 다듬는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특히나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바로 '띄어쓰기'였다. 규칙이 정해진 것이니 따르면 그만이겠지만 맥락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 까다롭고 성가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반발도 생기고 그런 저항감 때문에 더 고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애초 우리말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다. 듣기론 개화기 즈음 한 선교사가 '읽기 어려우니 영어처럼 띄어쓰기를 적용하자'고 그 기초를 제안하면서부터 '띄어쓰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일리 있는 제안이었을 터이고 이후로 규칙이 만들어지고 지금껏 계속 다듬어져온, 그런 내막이 있는 것이다. (그럼 일본 선교사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가)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 그 원서를 보다 보면 '아 이들은 교정교열이 얼마나 수월할까'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일본은 동어반복적인 '교정교열'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교열'이란 단어를 쓰는 건 그래서인가 싶기도 하고.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 한 명이 하든 100명이 하든 출판사는 그냥 출판사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흠이 있다손쳐도, 아니 흠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띄어쓰기는 만드는 사람보다는 읽는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즉 읽는 사람이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데 그 핵심이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도 어려워하실 띄어쓰기, 여전히 번거롭고 까다롭게 느껴지지만 책의 만듦새를 정교하게 하고 세공하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며 스스로를 달랜다.


ps. 교정교열 책도 몇 권 사서 읽어 봤으나 규칙이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매번 책을 펼쳐 가며 찾아볼 수 없으니 내 경우 네이버 사전과 우리말샘을 주로 활용했다.

위 두 사전에 검색 결과로 제시되는 단어나 표현의 뜻보다는 그 단어, 표현이 사용되는 문장 예시를 참고하며 띄어쓰기를 적용했다. 네이버 사전의 경우 표준국어대사전, 교려대한국어 대사전, 우리말샘 사전의 예가 같이 제시되는데 띄어쓰기의 경우 미묘하게 규칙이 다른 경우가 있어 기본적으로는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하되 애매한 경우는 위 두 사전의 용례를 참고하며 띄어쓰기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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