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宿記(4)

by saryu

앞집하고는 마주치면 서로 인사 정도만 주고 받는 사이이다. 이 집으로 이사오고 2년여 정도 후에 앞집이 이사를 들어왔는데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앞집에는 딸이 둘 있다. 첫째는 대엿섯살 정도로 보이는 유독 흥 많고 말 또한 많은 아이이다. 간혹 현관 너머로 아이가 신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이들 가족과 처음 만났을 때 "아 너가 그 말 많은 꼬마구나!"라며 인사를 겸해 한 마디 던졌는데 순간 아차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아이는 매일 혼난다. 근래는 떠드는 소리 보다 말썽 피워 혼나는 소리가 현관 너머로 더 자주 들린다. 그래도 오르내리는 층계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언제나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내오는 꼬마라 제법 기특한 생각이 든다.


생애 첫기억이 뭐였던가 떠올려 보면, 주변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진짜 기억인지 주입된 기억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학령기 직전의 기억들은 꽤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당시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 그랬듯 말타기, 칼싸움, 흙장난, 불장난, 물장난 등등하며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간혹 학령기 이전의 아이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대성통곡하며 떼쓰곤 하는데 내 경우는 당시 그런 식으로 부모에게 쟁의를 부린 적은 없는 것 같다. 동생이 바닥에 뒹구는 걸 보고 이해가 안돼 차갑게 쏘아보던 기억이 이를 입증한다(?).


싹싹 빌정도로 크게 혼나면서도 밖에서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는 저 꼬마는 훗날 자신 인생의 지금을 얼마나 기억할까. 혼은 날지언정 흐트러짐 없는 쾌할함을 지닌 시기. 순진무구해서 그렇다라는 표현은 지루하다.

두려움 없고 활발하며 순전히 자신에게 충실하고 당당하던 기억, 구름 한 점 없던 시절의 기억. 순진무구는 훼손 당한 것이지 잃은 것이 아닐 것이다. 훼손 당해 놓고는 잃었다며 아련한듯 혀를 찬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짐짓 통찰한 듯 개똥철학들을 펼쳐댄다.


오늘도 계단을 내려오던 아이가 난간을 잡고 인사를 건내온다. 반갑게 흔드는 손에 덩달아 품에 넣었던 손을 꺼내 맞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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