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생각

99년의 봄 어느 날에

by 이현선

99년의 봄 어느 날에

서린동 영풍문고에서 책을 사가신 김 선생님께


선생님께선 그 책이 너무 어렵다고도 하셨지만요

그래도 하루 종일 책만 읽는 날이 행복하다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같이 낡은 책장을 넘기는 일이 행복해졌습니다


책장 사이에 끼워두신 서점 영수증의 글씨는

반도 넘게 바래었으나

그날 오후 세시가 되기 몇 분 전, 그 시간에

영풍문고 서가 사이로 무슨 봄바람이 불었는지

왠지 알 것만 같습니다.


저는 그런 재미로 낡아빠진 헌책을 사다가 읽거든요

분이 나게 찐 감자처럼 포슬포슬한 책장을 넘기는 일만큼이나

이렇게 반가운 것들이 있어서요

선생님처럼 책에다 감상도 적고 일기도 적는 분이 저는 좋습니다

성함을 남겨주시면 더 좋고요


요즘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는 그런 책을 잘 사 주지 않는 모양입니다

책에 밑줄을 긋거나 이름을 썼다가는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책이 언제 팔려서

누구에게 어떻게 읽히다 나에게 왔는지

그런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거나

곧 그렇게 되려나요


99년도의 봄바람이 불어오는 24년의 찌는 여름밤에도

선생님께선 어떤 책을 읽고 계신지요

애독하시던 책과 함께 보내주신

괜한 것이 애틋하고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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