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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론빵 Mar 06. 2021

2. 큰 손 컬렉터의 컬렉션 속으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하염없이 가다 보면 신용산역에 도착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있는 이 곳은 역과 미술관 건물이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어서 항상 올 때마다 편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반짝반짝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을 지나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도 지나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가면 어느덧 미술관 입구에 도착한다.


아모레퍼시픽이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 <APMA, CHAPTER THREE>는 고미술 소장품을 보여주었던 지난번 전시와 다르게 현대미술 소장품을 관람객에게 보여준다. 전시 소개문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기존 전시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구성하여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실제로도 전시장에 들어가면 제작연도 2020년 작품까지 볼 수 있는데, 예술 작품에 대한 컬렉터의 관심도를 짐작하게 한다.


 

제니퍼 바틀렛, <보라색 통로>, 2004-2005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처음 본 이 작품은 제니퍼 바틀렛의 <보라색 통로, 2004-2005>라는 작품이다. 뉴욕 지하철 표지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이 작품은 가상의 보라색 통로에 대한 짧은 형태의 이야기와 드로잉을 그려 넣었다. 모자이크와 같이 촘촘하게 박힌 격자무늬 패널로 구성된 이 작품을 보고 있었을 때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로 적힌 동화책을 읽은 기분이었다.


스티븐 해링턴, <우리 주위에서>, 2019


제니퍼 바틀렛의 작품을 지나쳐 바로 옆을 둘러보면 스티븐 해링턴의 <우리 주위에서>라는 화려한 작품이 시선을 끈다. 화려한 색감으로 구성된 거대한 캔버스를 보면 익살스러운 야자수 나무들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강아지의 모습이 보인다. 작가가 영감을 받은 캘리포니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관람객들은 특히 이 그림 앞에서 많이 감탄을 내뱉곤 했다.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모녀가 이야기하는 걸 우연하게 들었는데, 캡션을 읽기도 전에 이미 모녀는 캘리포니아 느낌이 나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작가가 먼 이국 땅의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한 걸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 작가도 아니면서 마치 내가 작가인 양 자신만만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를 보면 작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바로 이런 것일까? 생각이 든다.


좌) 도널드 저드, <무제>, 1991/ 우) 조셉 코수스, <다섯 개의 다섯개(도널드 저드에게>, 1965


두 작품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걸 보고 큐레이터의 센스에 감탄했다.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마주 보고 있는 조셉 코수스의 작품 제목을 보면 큐레이터는 이걸 전시 기획에 정확히 이해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색과 물질 그 자체로 작품을 구성한 두 작품을 보면서 관람객은 과연 이것이 예술일까?라는 질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건 예술이 맞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가장 먼저 시도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에게 예술은 승자의 미소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시도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이미 남들이 하지 않은걸 다 빼면 생각보다 남은 것은 얼마 없을 것이니 말이다.


마이클 베빌라쿠아, <흥망성쇠>, 2010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다양한 화면이 입체적으로 하나의 캔버스에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서도 '흥망성쇠'라는 문구가 짓밟힌 뽀빠이 위로 도드라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흥망성쇠라는 무거운 단어를 유쾌함과 밝은 색감으로 보여주는 작가의 유머는 작가의 성격이 어떨지 보는 사람이 짐작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고, 그런 작가를 이렇게 찾을 때 괜스레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흥망성쇠. 어느 분야든 늘 존재했던 현상이다. 미술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어제는 <모나리자>가 최고였다면, 오늘은 형태가 없는 것 그 자체도 최고의 미술이 될 수 있는 것이 미술의 세계이다. 시기에 따라 흥망성쇠가 가장 두드러지게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이 분야의 매력이자 치명적인 요소이다.


말 그래도 큰 손 컬렉터의 컬렉션을 마음대로 걸어 다니고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내 것이 아닐지라도 입장권을 가지고 들어가는 그 시간만큼은 내 것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이 컬렉션 전시의 묘미이다. 흔하게 볼 수 없는 큰 손 컬렉터의 컬렉션. 놓치지 않고 꼭 챙겨보았으면!



전시회 Tip!


1.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전시의 가장 좋은 점은 의외로 조명이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은 국립박물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조명 기술을 보여준다. 어디서 봐도 빛 번짐이 없고 깔끔하고 명확하게 원본 그대로의 색감을 보여준다. 심지어 어두운 곳은 캡션에도 조명이 들어오니 이런 점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전시회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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