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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색림 May 28. 2020

내가 만난 꼰대들

꼰대에 분노하는 당신, 괜찮다

2011년에 첫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올해로 사회생활 10년 차다. 두 번 이직하고 세 번 사표를 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꼰대에 대한 인내심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노트에 '내가 만난 꼰대들'이라고 적고 목록을 작성해봤다. 기억 저편에 밀쳐뒀던 이름들이 쉴 새 없이 펜 끝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범죄인 나라에서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위험할 뿐만 아니라 큰 의미가 없다. 본인들은 어차피 자신들이 꼰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름 옆에 그들을 꼰대라고 생각한 이유를 적어 봤다.


내가 만난 꼰대들의 공통점: 책임, 굴욕감, 사과 무능력자


공통적인 이유를 뽑아 봤다. 가장 자주 나오는 키워드는 '책임'이었다. 자신의 권위와 위계질서는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책임은 피하려 하는 사람들을 나는 꼰대라고 봤다. 책임은 항상 남의 몫이었다. 내가 겪은 꼰대들 중 하나는 책임 전가의 달인이었다.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니 탓'이었다. 그가 시킨 대로 하지 않았는데 과장이나 국장이 칭찬하면, 그는 흡족해하며 '거 봐라, 내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잘 되지 않느냐' 했다. 반대로 그가 시킨 그대로 했는데 뭐 하나 어긋나면 '내가 언제 그렇게 하라고 했냐'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그런 책임 회피를 막기 위해 일부러 구두로 한 번, 카카오톡으로 두 번 보고했다. 기록을 남겨둬야 딴소리를 못하기 때문에다. 물론 기록을 보여줘도 '내가 언제 그랬지?' 하며 딴청을 피웠다.


상대에게 '굴욕감'을 줘서 굴복시키려 드는 경우도 허다했다. '알아서 기어라, 아니면 굴복시키겠다'는 태도다. 굴욕감을 주는 주요 수단은 비하 발언과 꼬투리 잡기였다. 내가 가장 빈번히 겪은 일이다. 한 꼰대는 통역 업무를 했던 나에게 '역관은 대대로 출세하지 못했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또 다른 꼰대는 내가 보고한 내용이 거슬렸는지 사소한 보고상의 형식을 꼬투리 잡아 온 사무실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고함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내 직속 상사는 나 빼고 다 남자인 팀원들 앞에서 내 허벅지 굵기가 어떻다느니 하는 성희롱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놨다. 또 다른 직속 상사는 내가 대표가 시키는 일만 한다는 불만을 담아 나에게 '너 대표 따까리냐'라고 했다.


이런 비하 발언에 대한 저항에 부딪친 꼰대들은 깔끔하게 사과하는 방법조차 모른다. '사과 무능력자' 행세를 한다. 내게 성희롱을 했던 상사는 계속 사과를 거부하다가 자신이 인사조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야 형식적인 사과를 했다. 나를 '따까리'라고 했던 상사는 대표에게 한소리 듣고 난 뒤 마지못해, 그것도 자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다음부터 안 그러겠다'고만했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미안하다는 말도 마음도 없었다. 상대방의 용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런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사과랍시고 한다.


꼰대에 분노하는 당신, 괜찮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잘만 참고 다니는데 나만 이상한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허사였다. 꼰대들을 향한 나의 분노는 갈수록 증폭되기만 했다. 프리랜서(라 쓰고 백수라 읽는다)인 지금도 일상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꼰대들을 겪으면 몸서리쳐질 정도로 분노하고 주체할 수 없이 화가 치민다. '꼰대(로 인한) 화병'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하고, 가만히 있다가도 성을 냈다. 이러다 누구 하나 잘못 걸리면 거기다 대고 온갖 화풀이를 하겠구나, 싶을 정도로 한동안 증상이 심각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나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이들을 위해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당신이 꼰대에 분노하는 거,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이다.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권위를 내세우면서 책임은 지지 않고, 상대방을 비하해 굴복시키려 들고, 사과할 줄 모르면서 자신이 이상한 줄 모르는 인간이 이상한 거니까.


참지 말고 저항하자. 참으면 나만 병나고 나만 아프고 나만 손해다.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자. 메신저 앱이든, 녹음 앱이든, 펜이든, 쓸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자. 그리고 따지자. 정정당당하게.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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